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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

지적장애인은 목욕탕에 갇혀 자도 돼?

사진 속 공간은 어디일까요?



맞습니다.
샤워장(목욕탕)입니다. 아니 예전에는 목욕탕이었을 이 공간이 보시다시피 용도변경됐습니다.

더이상 이곳에서 씻을수 없죠.
주의깊게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앞쪽에 기둥이 남아있고 오른쪽 빨간원에 있는 응급장치로 장애인 시설 또는 병원을 연상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이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었답니다.
차디찬 타일 바닥에서 이불한채없이 말이죠.

문고리는 밖에서 걸어잠글 수 있게 돼 있고, 불도 밖에서 끄고 킬 수 있습니다.
이 공간에 들어오면 자신의 의지로 밖으로 나갈 수도, 불도 켤수도 없다는 이야기죠.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천에 있는 한 장애인생활시설 모습입니다.
교회 목사님이 운영하고 있는 이 장애인생활시설은 개인운영신고 시설로 신고돼 있으며, 시설장애인을 위해 복권기금 2억6천만원이 지원된 곳이기도 합니다.

어떤 마음에서 이런 곳에 사람을 살게 했을까요.
백번 양보해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먹여주고 재워줬더라도' 인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아니 종교를 믿는 신앙인이라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할 수 있을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이들이 어떤 환경에 노출돼 있었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어 인천시청의 도움을 받아 분리조치를 24일 오전에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시설에서 매주마다 자원봉사하시는 이들이 몰려와 "왜 착한 우리 목사님을 괴롭히느냐"고 하며 분리조치를 하고있는 활동가들을 막아섰답니다.

정말 백번양보해 그 분이 얼마나 인격이 훌륭하고, 좋은 일들을 해오셨다고 하더라도 같은 사람으로 이런 곳에 장애인을 집어넣을 수 있는지 알 수없습니다. 
지적인 장애가 있는 이들은 이렇게 짐승처럼 대접해도 되는건가요? 
이제는 제발 어려운 가운데 시설을 운영하느라 힘겹다는 이야기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라면 더 힘이 들 장애인을 생각해서라도 그 짐을 벗어버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더이상은 저런 곳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난 9일 강화군의 한 장애인개인운영신고시설에서 '관리'의 이유로 지적장애인을 쇠사슬로 묶어놓은 사건이 터진 후 인천시 관내 개인운영신고시설에 대한 실태조사를 지난 월요일부터 민관합동으로 진행 중입니다.

어떤 구청은 "실태조사 나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묵살한 채 '친히' 사회복지 담당 과장과 팀장이 각 시설을 방문해 실태조사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게 하라고 지시한 곳도 있으며, 어떤 시설은 시설의 모체가 되는 교회와 결탁하고 시설장애인에게 써야할 돈을 빼돌려 무려 13억원 토지매입에 사용한 곳도 발견했습니다.

정말 시설을 돌아보는 게 무서울 지경입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안타까움을 넘어서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남은 시설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문제가 드러날지 두렵기만 합니다.
  1. Favicon of http://wjlee4284.tistory.com BlogIcon 사이팔사 M/D Reply

    참 어터구니가 없습니다.....
    다들 나중에 어찌들 하시려는지.....죄 받을껍니다.......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죄 받는건 둘째문제고 조속히 이들이 분리조치 되길 바라는데 어려울것 같아 고민입니다

  2. Favicon of http://littlehope.tistory.com BlogIcon 작은소망™ M/D Reply

    흐미 세상에 정말로 어이가 없네요..!!
    여기 운영하는 원장 제발 천벌좀 받았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방금전에 관련 기사를 올렸습니다.
      가슴이 터질것만 같네요

사진놀이

장애인의 분노, 하늘도 울었다

용산문제에서도 그렇듯 (기성)언론은 '장애인들이 기는 모습'에나 관심있지 장애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갖지 않습니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라 장애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주목받기 힘들고 묻히기 일쑤죠.

예견했던대로 굉장히 힘들고 고달팠던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해어캡까지 동원해 꽁꽁 싸매둔 제 카메라는 4월 20일에 이어 또 다시 사망해주셨고요 ㅠㅠ  면담은 별 실효성없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애인 단체 서울지회장, 시설협회, 교수 등 8명과 탈시설공투단 대표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 한명만이 참석했는데, 돌아나온 박 대표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이 씁쓸하더군요.

서울시 탈시설 계획을 논의하러 모인 자리에 참석한 단체장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시장에게 전달하고 있더랍니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분간못하는... ㅡㅡ;;

어쨌던간에 오세훈 시장의 탈시설을 바라보는 입장은 명확해 보입니다.
탈시설이라는게 진행이 되려면 베리어프리도 갖춰지고, 이동권도 보장되고 일할 수 있는 노동권도 보장되고, 시민들이 이들의 독립생활을 납득할 정도로 시민의식도 향상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이걸 조금 고급스럽게 '속도의 문제'라고 표현했더군요.
어찌보면 오세훈 시장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속도의 문제로 바라볼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한 상황에서 콘텐츠가 진행될수는 없겠다는 게 오 시장의 생각이겠죠. 하지만 이 인프라 구축이 '꿈의 나라' 수준만큼이나 이룩하기 어려운 것이고, 이 생애에서 볼 수 없을 내용이기 때문에 현실성없고, 그 사이 수많은 시설장애인들은 자신의 꿈을 접은채 하루이틀 멍하니 벽만 바라보다 저세상으로 가야합니다.

그걸 참을 수 없어서 8명의 장애인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시설을 뛰쳐나왔고, 최소한의 긴급대책들을 마련해달라고 한달 넘게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기업가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오세훈 시장은 이들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나봅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속에서도 눈물날만큼, 울화가 치밀어오를만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이렇게 싸워도 바뀌지 않을것 같은 현실이 암담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싸우면서 조금씩 바뀌어졌고, 발전해왔다고 스스로를 자위해봅니다.
 

오늘은 인천으로 출장갑니다.
목사가 운영하는 개인운영신고시설이라는데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지체장애인이 제보를 했습니다. 이 목사가 자신의 시설에서 생활하는 지적장애인을 학대하고 있으며, 자신도 학대받아 이곳에서 도저히 더 살수가 없고, 무서우니 도와달라고.

현장에서는 이런일들이 지원하기 힘들정도로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관계관청이나 시설장들의 대답은 모범답안을 외운사람들인양 똑같습니다. 그렇게 못된 짓을 했지만 '불쌍한 사람 먹여주고 재워줬던 공'을 인정받아 처벌수위는 그야말로 코딱지입니다. 
그놈의 인프라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거 만드는 사이에 시설장애인들은 다 죽어나가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오늘 안되면 내일, 내일 안되면 모래... 라는 심정으로 계속 짱돌을 던져봅니다.

여러분들이 힘을 보태주신다면 더 큰 용기와 희망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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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M/D Reply

    안타까운 사연이네요~
    무슨 대책이 강구되어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오세훈 시장은 대책이 마련되려면 여러가지 상황들을 고려해야 하니 지금당장 안된다고 하더구만요. 정말 답답합니다

  2. Favicon of http://littlehope.tistory.com BlogIcon 작은소망™ M/D Reply

    아아 정말로 너무 안타깝네요..
    저렇게 처절한 몸부림..윗놈들은 안봐주나요..
    애효..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이들이 겪는 일이라고 치부하더군요

  3. Favicon of https://semiye.com BlogIcon 세미예 M/D Reply

    참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그래도 세미예님 같은 분이 있어서 힘이 납니다 ^^

  4. M/D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한번 시도해 봐야겠어요

  5. Favicon of http://blue2310.tistory.com BlogIcon 드자이너김군 M/D Reply

    도데체 나라는 뭘위해 존재 한단 말입니까. 뭘위해 쓰잘데기 없는 정책들 가지고 입만 나블 거리고..
    아.. 정말 가슴이 답답합니다..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터질것 같은 마음때문에 술한잔 했습니다 ㅡㅡ;;

  6. Favicon of http://hongman111.tistory.com BlogIcon 홍E M/D Reply

    사진 찍으실때 조심하셔야 되겠어요. 다치시면 이런소식은 많은 사람들이 못볼수도 있으니... 뉴스에도 잘 나오지 않는것 같던데.. TV는 잘 안봐도 뉴스는 자주 챙겨보거든요..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뉍 조심조심 하겠습니다 ^^

  7. Favicon of http://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M/D Reply

    장애인에게 우리나라처럼 함부로 하는 나라는 없을거에요.
    마음 아픕니다.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다른나라 이야기 들어보면 입이 떡벌어지죠. 경제규모에 맞는 지원과 제도가 뒷받침되길 바라는데 더 멀리 가고 있으니...

  8. Favicon of http://bluepango.net BlogIcon bluepango M/D Reply

    어떻게 힘을 드려야 하는지 알려 주셨으면 좋을거 같아요...
    안타까운 소식들이 너무 많은거 같아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제가 계속 안좋은 이야기만 다뤄서 그것도 속상하네요

  9. Favicon of http://haneulnuri.tistory.com BlogIcon 하늘누리 M/D Reply

    비속에서 고생하셨을 분들을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미어져오네요~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다행히 다치거나 전동 고장난 분들이 안계셔서... 제대로 씻지도 못할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집니다

일상다반사

이 비를 맞으며 집회를 해야 하는 대한민국 장애인의 현실이란...

잠시 후 2시부터 '탈시설-자립생활'을 주장하며 전국의 중증장애인 활동가 100여명이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중 결의대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배경인즉슨 일전에 소개했지만 8명의 장애인이 20여년간의 시설생활을 끝내고 지역사회로 나오셨습니다. 물론 거처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죠.
하지만 시설에서 생활하면서는 몇십만원도 안되는 장애수당을 모아 집을 얻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임대아파트 신청 자격도 안나오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룹홈이라는 소규모 시설을 통해 자립생활을 준비하시는데 이를 거부한거죠.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한달가까이 노숙농성을 벌였지만 주소지가 없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비는 물론 활동보조인서비스도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활보는 나중에 받는 했지만) 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에 긴급진정을 한 상태이고, 지난 6일 급기야 인권위 11층 점거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공투단 측이 요구한 3가지 안에 대해 서울시 측은 자립주택 등 주거대책에 대해 '복지부와 국토해양부 소관이다', 탈시설 5개년 계획에 대해서는 '노력 중이나 구체적인 답변은 할 수 없다', 활동보조서비스 시간확대는 '예산없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은 서울시장과의 면담이 잡혔습니다.
이들에게는 정말 꿈만 같았던 일이 현실이 된 셈이죠. 하지만 서울시의 어처구니 없는 태도에 장애인들은 또다시 분노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오늘의 면담이 단독면담이 아닌 장애인 단체장과의 면담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참가인원은 9명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서울시 측은 정확한 참석인원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소식통에 의하면 시설측 관계자, 교수, 장애인 단체장이 올 예정이랍니다.
면담시간은 약 3~40분. 사실 한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해도 부족한 시간이지만 참석 예정인 인원들 중에는 탈시설에 반대하는 입장에 선 이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면담결과는 빤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시 관계 공무원의 태도도 문제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관련해서는 어떤 부서와 연결해도 제대로 된 답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는 상황도 연출되고, 듣기싫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한 공무원도 경험했습니다. 저에게만 그런걸까 싶어 다른 기자들에게도 물어봤더니 똑같은 상황이더군요.) 

이때문에 집중 결의대회를 갖게 됐는데, 담당 간사랑 통화했더니 "예정대로 진행한다"는군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있기 때문에 취소할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난 420, 그러니까 정부는 '장애인의 날', 장애인 당사자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벌어진 행사가 떠오릅니다.

그때도 오늘처럼 하루종일 비가왔는데, 어찌나 비가많이 왔는지 속옷까지 다 젖고 카메라를 비롯한 모든 전자장비가 다 고장나는 사태를 맞이했었죠 ㅠㅠ
오늘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그때보다 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 비에 전동휠체어는 무사할런지. 다치는 사람은 없을지...
나가기 전부터 두렵습니다.
  1. Favicon of http://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M/D Reply

    안타깝네요 ㅜㅜ
    제대로된 행정업무가 절실해 보입니다 ㅜㅜ
    안그래도 날씨도 안좋은데 ...
    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다행히 다친 분은 안계십니다.
      다만 제 카메라와 우산이 망가지고, 다수의 전동휠체어가 물을 먹어 작동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죠

  2. Favicon of http://hongman111.tistory.com BlogIcon 홍E M/D Reply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저역시 지금 6급 시각장애인이예요. 한쪽눈이 잘 안보이거든요. 저처럼 멀쩡한 사람이 나가서 해야하는데.. 이렇게 앉아서 글쓰는것도 너무 죄송스럽니다.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시각장애인연합회 쪽에선 탈시설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오늘 자리에도 시각장애인연합회 분이 참석했는데, 정말 얼토당토없는 이야기를 하셨더만뇨.

  3. Favicon of http://happy-box.tistory.com BlogIcon 건강정보 M/D Reply

    너무 안타깝고 정말 할 말이 없네요..
    어제 비 아주 쏟아지던데
    한분도 안 아프고 안 다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ㅠㅠ

    • Favicon of http://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M/D

      정말 화딱지 났던게요... 그 비를 그렇게 쫄딱 맞았었는데, 집회가 끝날무렵 사무실에 왔더니 언제그랬냐는듯이 해가 쨍쨍나기 시작하더라고요 ㅠㅠ

장애인복지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이동, '막을 수 없는 흐름'

얼마전에 서울시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농성 중인 중증장애인 8명에 대한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간략히 다시 설명 드리자면 장애인생활시설에서 20여년 간 생활해 온 중증장애인 8명이 '더이상 시설에서 살 수 없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하며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지 벌써 한달이 다되갑니다.

시설에서의 삶이 자신의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생활을 해야 하기때문에 흔히들 군대나 교도소를 비유합니다.

저 역시 군대를 다녀왔지만, 안에서 정말 힘들었던 건 집에서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남을 죽여야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하고', '싫은 사람과 한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정말 미칠정도로 싫더군요. 군대나 교도소야 기간이 있으니 시계 바라다보며 산다고 하지만,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요. 정말 끔찍합니다.

충북의 한 정신요양시설 내부모습. 이 방에 6명의 정신장애인들이 평균 10여년 간 생활하고 있었으나 이들 소유의 짐이라고는 치솔하나와 낡은 점퍼 한벌이 전부였다.


물론 요즘 상당수의 시설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려고 노력들을 하지만 이런 노력들에 대해 비난하거나 비판하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서는 어떤 곳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각설하고, 이전 글에서도 잠시나마 소개를 해드렸는데, 일본에서 탈시설 운동이 벌어진 1970년대 탈시설 운동의 현장에 있었고, 지금도 장애인 노동권 문제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일본 공동련 사이토 겐조 대표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당시 마로니에 공원을 찾아 노숙농성 중인 장애인 8명과 간단한 간담회를 진행했는데요, 그때의 소감과 일본 탈시설 운동에 대해 짧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지만 일본에서의 탈시설 운동은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대한 의미있는 자료라 생각 돼 이곳에 올립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내년에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장애인교류대회의 사전 협의회를 위해서 장애우권익문제소 직원들과 함께 중국에 다녀온 후 서울에 2박3일 동안 머물렀다. 올해 설립25주년을 맞이한 공동련의 기념 비디오를 제작하는데 거기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만든 사회적 기업을 몇 군데 촬영해서 넣기 위해서였다.

그 동안에 오랜 지인인 박옥순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서울 시내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투쟁을 하고 있으니 와 주시면 좋겠다는 옥순의 말을 듣고 나는 지난달 11일 밤, 비디오 촬영감독과 함께 마로니에 공원으로 나갔다.

왜 이런 곳에서 시위하고 있느냐는 내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시위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의 도착은 해질 무렵이었는데, 공원을 지나가는 일반사람들은 많았으나 이런 곳에서 시위를 하고 얼마나 사회에 호소할 수 있는지 좀 걱정이 되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현수막과 휠체어를 탄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노숙투쟁의 장소는 지붕이 있는 이벤트 무대였다. 거기서 난 시설에서 나갔다는 여덟 명의 장애인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시간이 너무 빡빡하고 또 그 분들이 많이 피곤해 보이셨기에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으나 대략은 다음과 같았다.

그 분들은 석암재단 석암베네스타요양원에서 생활하셨던 분들이셨고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시설을 퇴소하며 여기서 노숙투쟁을 하고 있다. 그 날은 8일째 되는 날이었으며 그 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정부책임이니 서울시에 그 요구를 하고 있으나 서울시는 그것은 국가책임이라고 회피하려고 한다.

원래 시설 비리를 고발하는 것으로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현직 서울시장과의 협상 가운데 현 시설생활인의 욕구조사를 행하여 그 결과에 맞는 정책을 생각해 보겠다면서 아직까지 그 결과발표를 안하고 있다. 그 조사결과에 따르면 절반이상의 시설생활인이 시설을 나가고 싶어 하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만 갖추어 진다면 그 비율이 70%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덟 명의 장애인들이 일어나서 지역생활을 성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이 투쟁은 1970년대 일본 후추요육(府中療育)센터의 장애인 투쟁을 상기하게 한다.

후추요육센터 이전저지투쟁

“우리는 현재 도립 후추요육센터라는 곳에 입소중입니다. 요육센터는 장애인 장애아를 모두 도매금으로 인간취급은 전혀 안 해 줍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시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싶어도 화장실조차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습니다. 외출 외박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 승인이 없으면 못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외부사람한테 조금이라도 이야기하면 그 당사자는 집중적으로 공격을 당하며 억압을 받고 왕따를 당하며 신경쇠약이 되어 버립니다....”

1970년대는 일본 장애인운동의 빛나는 투쟁시대였다. 후추요육센터 투쟁을 비롯하여 중증장애인 운전면허취득 투쟁, 27세 장애인의 일반초등학교 입학투쟁, 아오이시바노카이(푸른잔디회)의 버스승차투쟁, 그리고 특수학교의무화 저지투쟁으로 이어진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비롯한 중증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싸움의 역사는 차별, 편견을 고발하며 정상화시대를 개척하는 뜻으로 아주 중요했다. 특히, 1970년대 초기의 영화 ‘사요나라(안녕)CP’ 는 장애인의 생존권을 부정하는 사회를 예리하게 고발하였고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조직한 ‘아오이시바노카이’를 전국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후추요육센터 투쟁은 시설의 비인간성이나 열악함을 사회에 알리며 지역생활의 중요함을 많은 장애인이나 관계자에게 인식시켰다. 또한 1972년 9월부터 1년9개월에 걸친 동경도청앞에서의 농성투쟁은 결국 후추요육센터의 오지 강제이전을 저지하기에 성공했고, 1974년 6월에 천막을 철거해서 그 막을 내렸다.

농성투쟁 선언

“센터에서는 우리를 완전히 무시한 타마갱생원(多摩更生園)의 이전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장애인에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시설에서 시설로 억지로 수용되는 우리들. 시설은 점점 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집니다. 이는 바로 격리, 분단, 차별을 촉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후추요육센터 생활인의 목소리. 발췌: 미쯔이 키누꼬의 ‘난 인형이 아니다’ - 이 책은 작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번역본이 출판되었음)

1960년대 말 시설생활인 편이었던 직원의 인사이동에 반대하는 시설생활인의 농성이 계기가 됐는데, 1971년 시설이전에 반대해서 동경도청과의 협상을 시작했으나 도청 쪽의 성의 없는 태도에 분노를 감추지 못해 취하게 된 당사자들의 행동이 바로 농성투쟁이었다.

그 당시의 도지사는 사회당 공산당이 지지하는 진보적인 지자체의 상징적 지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목소리에는 전혀 응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강제이전은 저지되었고 시설환경에 몇 가지 개선이 이루어졌으나 본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이에 따라 농성투쟁에 참여한 시설생활인들은 그 시설처우에 참을 수가 없어 지역생활을 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투쟁을 통해서 1960년대까지 천국과 같이 여겨졌던 복지시설이 실제 말도 안 되는 비인간적인 장소임이 드러났고, 결국 1981년 일본후생성이 그 동안의 시설복지에 일관한 정책으로부터 ‘시설복지’와 ‘재가 및 지역복지’를 병행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은 명확하다.

2006년도 동경 히비야 공원에서는 1만5천명이 모여 자립지원법 제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다.


일본에 있어서의 시설복지의 전환


70년대는 시설문제뿐만이 아니라 정신병원, 특수학교의 비인간성이나 폐쇄성 등도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으로 얼마만큼의 변화가 이루어졌는가.

시설만 해도 1981년의 방침전환에도 불구하고 그 수는 계속 늘어났고 정신병원도 특수학교도 증가일로를 걸었다. 그러다가 2003년 장애인지원비 제도 도입, 2004년 정신보건복지대책본부 ‘정신보건의료복지의 개혁전망’이 세워지면서 겨우 그 흐름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그러나 특수학교 수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2006년 장애자자립지원법은 다수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나 시설에서 지역으로의 방향성은 확실히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 그 실태가 어떤 것인지 내가 살고 있는 나고야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나고야 시는 장애복지계획으로 다음과 같은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1. 복지시설생활인의 지역생활 이행.
2. 입원중인 정신장애인의 지역생활 이행.
3. 복지시설에서 일반기업 등 취업 이행.
4. 지역생활지원 충실.


우선 복지시설생활인에 관해서는 장애자자립지원법 시행이전의 시설생활인 1천370명 가운데 5년에 걸쳐 감소시킬 인원수, 즉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할 인원수는 단지 110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천260명은 2012년이 되어도 그대로 시설에 남아 있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8%만을 감소시킨다는 계획인 것이다.

이를 더 정확히 설명해보면, 1천370명 가운데 370명(27%)이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올 예정이지만 이와 별도로 2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신설할 계획이어서 결국 감소될 인원은 110명만이 되는 것이다. 이는 경증인 장애인을 지역으로 내보내는 반면 중증장애인들은 시설로 수용하려는 의도가 있다.

한편, 시설생활인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자 수는 186명으로 작지만, 응답자 125명 가운데 시설에 남고 싶다는 사람은 35.2%, 재가 또는 그룹홈, 아파트 등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46.4%, 기타 18.4%로 약 절반의 사람이 시설에서 나가 지역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설에서 지역으로 장애인들을 내보내겠다는 장애자자립지원법도 결국은 당사자의 욕구를 절반밖에 성취할 수 없는 계획임을 의미한다. 후추요육센터 투쟁으로부터 35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수용시설은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미야기 현 후나가다 코로니, 나가노 현 니시코마고우 등 대형시설 해체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으나 그 공사가 중단되었거나 지역의 생활거점이 될 그룹홈의 증설공사가 장애자자립지원법에 의한 보조금 삭감으로 인해 중간에 멈추거나 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전국 각지의 대형수용시설도 해체방향으로 가겠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시설에서 시설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와빠회 운동

정부의 늑장 대응을 볼 때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역생활을 추진해 온 원동력은 장애인 당사자와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자주적인 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와빠회(1971년 설립)도 후추요육원센터 투쟁과 시대가 겹친다. 와빠회도 마찬가지로 수용시설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시설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고 지역사회에 대안적인 생활 터를 만들고자 생긴 것이다. 장애인 한명과 비장애인 두 명의 공동생활로부터 출발해서 오늘날 18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애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대등하게 일하는 사회적 사업소로 성장했다. 와빠회에는 수용시설을 퇴소한 사람, 퇴소하려고 했다가 못했던 사람, 일단 퇴소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있다.

와빠회에 있어서도 1973년에 일어난 사카모토유리KK를 둘러싼 투쟁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기업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고 복지시설이 아니었지만 장애인 모두가 공장에 생활하면서 일하는 중소기업이었고 휴일의 외출조차 제한되는, 어떤 의미로는 시설보다 더 폐쇄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거기서 관리직 종업원으로 있었기에 거기서 일하는 십 수 명의 지적장애인들이 와빠회와 관계를 맺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이웃 지자체의 복지시설이나 특수학교에서 와서 고용된 사람들이었고 모두가 공장 내의 좁은 방에서 살고 있었다.

급여는 나오기는 했지만 기숙사 생활은 자유가 없고 외출허가가 나오는 휴일에 와빠회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해고된 후 그들의 외출은 금지되었고, 몰래 도망쳐 온 사람이 직장폭력이나 단속이 심해져서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몇 달 후 그들과 함께 법무국 인권옹호부의 인권침해사건을 호소함으로 그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고발은 공장 내의 폭력이나 박해를 없애고 그들이 즐겁게 일하며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어떤 때는 그런 변화를 기대했으나 고발한 지 석 달 지나서 그 공장은 폐쇄되었고 복지 또는 교육관계자들이 그 장애인 노동자들을 구시설이나 가족 곁으로 강제적으로 데리고 갔다. 와빠회에서 그들의 가족들을 찾아가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설득을 시도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는 우리에게 단지 문제를 고발하는 것만 이라면 우리 소망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함께 일하고 살 수 있는 장소를 창조해 나가야만 했었고 사회는 그렇게 쉽게 변화시킬 수 없는 곳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 후 나고야 시에 대한 끈덕진 교섭덕분에 1975년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공동생활-공동작업사업’ 보조금 제도를 얻어 냈고 와빠회의 발전에 기초를 구축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으로 귀국한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지금도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투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줄기차게 서울시에 요구하고 투쟁함으로써 반드시 그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끝까지 싸운 사람 덕분에 후세 사람들이 그의 열매를 향수할 수 있다하더라도 열심히 싸운 사람이 쓰러질 수도 있다.

장애인권리조약이 전 세계에 기치를 내거는 오늘날, 인간답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누구나 얻을 수 있기를, 또 마로니에 공원에서 싸우고 있는 그 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관련기사: 탈시설 운동의 원동력, 생활인의 목소리 사회에 알려야
장애인복지

행사 지장있으면 중증장애인의 사지 잡고 끌어내도 되나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살고 계시다가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요구하며 '탈시설'한 후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농성을 진행 중인 장애인 8명과 탈시설 공동투쟁단 소속 활동가들은 오전 8시부터 서울시 직원정례조례회가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으로 찾아가 기습시위를 벌였습니다. 

아침부터 이들이 기습시위를 벌이게 된 이유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6박 7일의 일정으로 해외에 나갔다 오기 때문에 벌써 19일째로 접어든 노숙농성이 더욱 장기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중증장애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 프래카드를 들고 '오세훈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자  서울시 공무원들과 청원경찰들이 순식간에 막아서더군요.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중증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에서 떨어지고, 그래도 기어서라도 가겠다는 걸 막아선 채 사지를 잡아서 밖으로 끌고 나오는 장면을 연출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 분들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행사에서 '불청객'이 찾아들어 방해하고 있으니 이를 말릴 수 밖에 없다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토록 주장하고 요구해도, 많은 장애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인 '동정과 시혜'의 관점으로라도 거들떠조차 보지 않는 서울시장의 얼굴을 꼭 한번이라도 보겠다고 꼭두새벽부터 준비해 얻어맞을 걸 각오하고 '행사장'에 찾아온 장애인들의 심정은 해아려보셨는지 참 궁금합니다.

더욱이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처리과정에서의 서울시 공무원 행태입니다.
이들이 백번 잘못했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서울시의 얼굴인 공무원이 '행사방해'를 했다는 이유로 중증장애인의 팔과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나오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찰입니까? 물리력을 동원해 사람들을 밀어내게? 그렇게 끌려나온 중증장애인 몇 분은 허리에 통증을 호소하고 계셨습니다.
힘있고 건장한 비장애인이라면 그랬을까요?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고선 전동휠체어와 분리한 채 사람을 짐짝 나르듯 밀어내는 서울시 공무원들, 그동안 어떤 태도와 마음자세로 관내 장애인들을 대했는지 눈에 선합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세상 엿보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장애인복지

독립생활을 꿈꾸는 8명의 장애인들의 '탈시설기'에 관심가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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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생활시설 석암 베데스다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장애인 8분이 시설에서 나와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인 아닌 노숙을 한지도 벌써 열흘을 넘어섰습니다.


우리사회에 하도 엄청난 이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덕(?)에 영 여론몰이가 안 되고 있지만 노숙을 불사한 이분들의 ‘탈시설기’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흔히 생활시설을 이야기할 때 ‘때 되면 밥 주고, 재워주니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군대 다녀오신 남성분들, 군대서 때 되면 밥 주고 재워주니 편하셨습니까? 여성분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스타일의 머리와 옷을 입고 남이 해주는 대로 생활하시라고 하면 하실 수 있겠나요?


앞서의 표현은 극단적일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좋은 이념을 갖고, 훌륭한 사회복지사들과 시설을 완비한 시설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의사보다 단체가 중요시되고, 룰에 따라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간에서 언제 나갈지도 모른 채 지내야 한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시설이 한 인간에게 안겨주는 부담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물론 시설에서의 삶을 원하는 이들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자유와 권리의 보장, 이를 위해 국가는 당연히 이들을 위한 각종 편의를 제공해야 맞는 것이겠죠.


이번에 시설에서 나온 8명은 그야말로 ‘살고싶은 곳에서 살고싶은 욕망’을 원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거리로 나온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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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행동에 대해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 ‘거주지 등 기본대책은 마련하고 나왔어야 하지 않느냐’, ‘편한곳 놔두고 사서 고생이냐’, ‘무모한 선택이다’ 등 별의별 비난들이 들려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이런 의견들에 대해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정문 대표께서 어느 집회 발언 중 명쾌하게 해답을 주셔서 이를 인용해 봅니다.


“몇 해 전,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서 결혼하겠다고 했더니 가족을 비롯한 주위사람들은 ‘결혼하면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며 날 말렸다. 자기들은 다 결혼했으면서... 그때 내 나이가 27살이었는데, 내 주위의 비장애인 친구들은 ‘어서 빨리 시집가라’는 압력을 집에서 엄청 받고 있었다.”


 “18살쯤, 자립생활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있던 시절, 10년 후나 20년 후나 멍하니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내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한심스러워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우리가 시설에서 나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하면 시설장을 비롯한 주위사람들은 ‘편한 곳 마다하고 왜 나가서 고생하려고 하느냐’고 우리를 붙잡는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게 어찌보면 정말 편하다. 하지만 자기네들은 세상에서 모진고난과 어려움을 다 이겨내면서 살아가면서 왜 무기력증에 빠진 채 멍하니 세월 보내다 짧은 생을 마감해야 하는 삶이 아닌 도전하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하는 걸 막느냔 말이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들의 ‘탈시설기’가 무대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 생애에서는 다신 경험할 수 없을지도 못할 자립생활을 언제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정부 정책’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세상과 맞서 싸워보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닐까요. 8명중 1명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최소 20여년을 시설에서 생활해 오신 분들입니다. 속칭 ‘시설병’에 걸려도 중증에 속할 이들이 무념무상의 시설보다 거친 세상을 선택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박수를 쳐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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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이 시설에서 나오자 정부가 주장하는 탈시설 정책이 무색하듯 여러 가지 제도들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상생활 영위 ▲주거지 ▲소득보장이 바로 그것인데, 시설에서 생활하게 되면 우선 본인 앞으로 나오던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오지 않습니다. 때문에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고 싶어도 주택임대를 위한 비용이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언젠가 인터뷰 중 “목사(시설장)에게 맞는 게 너무 싫어서 몇 년간 모아놓은 장애수당을 들고 도망 나왔지만 그 돈으로 숙박비와 식사를 해결하고 나니 일주일도 버틸 수가 없어서 결국 체념하고 시설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정착금’ 제도가 있긴 하지만 액수가 미비해 그 돈으로는 도저히 시설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가족의 도움을 얻어야만 가능한 일이 되는데 이런 부담을 떠안을 수 없거나 떠안을 용의가 없는 가족들이 시설에 맡기는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변화가 없이는 ‘시설에서 지역사회로’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뿐일까요. 활동보조인이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도 바깥세상의 주소지가 없으면 활동보조인 서비스도 신청할 수 없으며, 주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신청하고 선정되는데 여러 달이 걸려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또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역시 주거지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신청할 수 없어 생계비를 받을 수가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시설에서 나와서 살란 말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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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들을 알면서도 나오겠다는 용기를 내셨는지 살짝 궁금해져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잘 알고 있지만 더 이상 시설 안에서 생활하면서 바꿀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느끼게 돼 용기를 냈다. 우리가 나오는 걸 바라지 않는 수많은 주변인들과 이미 싸움을 치르고 나왔다. 이제는 우리 8명이 똘똘 뭉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걱정스러운 시선보다는 이겨낼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 탈시설 운동의 1세대쯤 되는 사이토 겐지 씨께 들었던 초창기 일본 탈시설기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이야 탈시설이다 정상화다 수많은 이론과 모델들이 있지만 당시 7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도 ‘탈시설’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시설생활인들과 접하면서 ‘이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고, 뜻을 같이한 시설생활인들과 활동가들은 어떻게 하면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나와서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국 시설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을 야밤에 몰래 리어카로 실어 시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우리는 도저히 시설에서 살수 없어서 나왔으니 대책을 마련하던 우리를 죽이라고.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탈시설 지원정책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서울시 시설생활인들의 욕구조사를 통해 탈시설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속과 달리 욕구조사 결과조차도 차일피일 발표를 미루고 있자 며칠 전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민원서를 서울시청에 제출했고, 그래도 만나주지 않을 경우 ‘그림자 투쟁’을 벌여 목숨을 건 담판을 지으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길에서 밥을 먹고, 잠시 쉴 곳조차 마땅치 않아 하루 종일을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고, 간신히 밤이슬만 피한 채 작은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는, 말 그대로 ‘노숙생활’이 얼마나 오래가야 끝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때까지 8분 모두 건강하게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서울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탈시설-자립생활’과 관련한 선전전과 서명전이 날마다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지나가시다가 이들 모습이 눈에 띄면 지지의 서명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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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

탈시설 장애인 8명, 오세훈 시장 그림자 투쟁 시작


오세훈 서울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그림자 투쟁이 또 시작된다. 

석암시설에서 생활하던 석암비대위 소속 활동가 8명이 시설에서 나와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생활을 한지 9일째를 접어든 가운데 사회복지시설비리척결과탈시설권리쟁취공동투쟁단(이하 탈시설공투단)은 지난 11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보장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 촉구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장애인 시설에 찾아가 장애인을 위로하러 가는 게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책임져야 할 국가수장이 갖고 있는 인식이다.”라고 개탄하며 “장애인 인권을 책임져야 할 사람의 인식이 ‘불쌍하고 위로받을 대상’ 정도로 여기는 등 시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장애인의 복지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현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이 정부는 장애인 복지를 한답시고 ‘힘든 사람은 시설로 오라’고 말한다. 시설에서 살던지, 일을 하던지 모두 본인 스스로가 결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탈시설 정책으로 전환했다’고 말만할 뿐 여전히 장애인을 시설에서 생활하도록 조장하고 있다.”며 “지금도 거대시설을 조장하고 있는 정부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노숙농성에 참가하고 있는 김진수 활동가는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이번에 나온 이들은 중증장애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일상생활에서의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고, 최소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기위해서는 기초생활수급비 수급이 필수적이지만 ‘주소지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모두 거절당했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요청하자 활동보조서비스는 제공받고 있는 상황이다.

김진수 활동가는 “정부는 ‘무조건 나왔으니 대책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주거문제는 국토해양부 소관이다. 다만 3개월 정도 시간을 주면 방법을 모색해보겠다’고 말했다.”라며 “우리가 당장 집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아픈 사람도 있으니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주소지를 옮겨놓을 수 있는 주소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우선 모색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며칠째 비바람이 치는 데 천막을 못 치게 해 비바람을 맞아가며, 노숙인들을 위한 밥차에서 밥을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이야기를 하려했으나 만날 수가 없어서 오늘부터 우리가 직접 오세훈 시장을 찾아다니는 투쟁에 돌입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연대발언에 나선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정문 대표는 시설에서 나온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의식한 듯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들의 선택을 지지하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송정문 대표는 “다른 사람들은 직장을 갖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사는데, 우리는 이제 시설에서 나온 이야기를 해야하는 현실이 우울하다.”고 말문을 연뒤 “예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하겠다고 하자 부모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결혼하면 얼마나 힘든줄 아냐’며 극구 말렸으나 내 또래 다른 친구들은 ‘어서빨리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나오려고 하면 ‘나가서 사는건 힘들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지역사회에서 온갖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잘 생활하고 있다. 누가 무슨 권리로 우리들의 삶을 애초에 포기하고 살게 만드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었다.

이어 “자립생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절,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방구석에서 나올 수 없고, 뭘 하려해도 못하게 말리는 부모 때문에 무기력하게 살다 죽을 것 같아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라며 “시설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다. 무기력증에 빠져 감흥도 기대도 없이 그렇게 살아다가다 짧은 생을 마감하느니 이렇게 나와서 생활하는 게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삶을 선택한 8명의 동지들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고 말했다.

결의대회가 끝난 후 탈시설공투단 소속 회원들은 오세훈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면담요청서를 서울시청 민원실에 제출하려 했으나 경찰병력에 막혀 30여분가까이 실랑이를 벌였다.

탈시설공투단 회원들이 “왜 정당하게 민원서류를 제출하려고 하는데 막아서느냐”며 한참을 항의하자 임시방편으로 민원실 직원이 책상과 서류를 가져와 현장접수를 받는 해프닝을 벌여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에게 빈축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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