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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의료사각지대 막는 ‘올빼미 약국’

의료사각지대 막는 ‘올빼미 약국’

설 연휴를 맞아 제주를 찾은 윤영화(여, 42)씨 가족은 공공 심야약국의 덕을 톡톡히 봤다. 급체를 했는지, 남편이 갑작스레 복통을 호소하자 근처 병원을 찾았지만 휴일이라 문을 닫았고 시내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까지 가기에는 애매한 상황. 게다가 특정 의약품에 알레르기가 있는지라 편의점에서 파는 소화제도 함부로 먹을 수 없어서 고민에 빠졌다. 윤씨는 다행히 리조트 근처에 밤 12시까지 문을 연 공공 심야약국에서 상담 후 남편에게 맞는 소화제를 구입할 수 있어서 한시름을 돌렸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공공의료서비스 확대를 위해 시행중인 공공 심야약국에서 한 약사가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제주특별자치도가 공공의료서비스 확대를 위해 시행중인 공공 심야약국에서 한 약사가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
2012년 전국 처음으로 제주에 도입된 공공 심야약국은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의약품 판매와 복약지도 등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12개소에 이어 올해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애월읍 하귀리,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등에 3곳이 추가로 지정됨에 따라, 총 15개의 공공 심야약국이 운영 중이다. 공공 심야약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약품은 소염진통제(21%)였으며, 소화기관계 약품 17%, 호흡기질환 약품 13.7%의 순이었다. 공공 심야약국으로 지정되면 도에서 매월 150~2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반응도 좋다. 지난 한 해 동안 하루 평균 45명(연간 1만2492명)이 공공 심야약국을 이용했으며, 1만 6,896건의 의약품을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특별자치도가 2012년 한 해 동안 공공 심야약국을 위해 쓴 예산은 7700만원이다. 공공 심야약국은 그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모범사례로 극찬을 받았으며, 한겨레신문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지방사회보장발전연구센터·한국지역사회복지학회 등이 전국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2013 대한민국 지역사회 복지대상’공모를 실시한 결과 최우수 사례로 선정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제주사례를 토대로 대구광역시 8곳, 부천시 3곳에서도 공공 심야약국을 시범 운영 중이다.
공공 심야약국 운영, 국민 건강권 확보 차원서 시행
공공 심야약국 운영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 ‘공공보건의료 시행계획’ 조례를 대표 발의한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박주희 의원(무소속, 비례대표)은 “당시 우근민 도지사는 24시간 공공 응급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읍·면·동 보건기관 24시간 진료체계 구축사업은 사실상 진전이 없었다.”며 “특히 제주지역 219개 약국 중 저녁 10시 이후에도 운영하는 약국은 18개소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제주시에 몰려있어서 사실상 심야 시간대에는 긴급 의약품을 구매하기 힘든 실정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 의원은 “조례 통과 후 시행된 공공 심야약국이 도민과 관광객 등에게 좋은 평가를 받자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확대할 의사를 밝혔으나 ‘편의점에서 파는 의약품으로 충분히 커버가능하다’는 일부 의원들의 주장 때문에 예산이 깎일 뻔 했다. 허나 ‘공공 심야약국의 운영이유는 도민들의 건강권 확보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아이를 둔 부모라면 응급실에 가지 않아도 생활에 꼭 필요한 상비약을 집 근처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1억 원도 안 되는 작은 예산으로 도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방자치 시대에 필요한 눈높이 서비스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제주시 조천읍에서 공공 심야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조천약국 김희선 약사도 공공 심야약국 운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약사는 “밤늦게까지 문을 연다고 하니 동네 주민들의 만족도가 상당하다.”며 “개인적인 볼일이나 모임 등에 참가할 수가 없는 점은 아쉽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지 않나. 늦게까지 이용할 수 있는 약국이 있다고 든든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주로 급체나 몸살환자들이 공공 심야약국을 찾는다고 밝힌 김 약사는 “큰 병이라면 응급실로 가야겠지만, 단순히 체한 기운이 있다거나 몸이 욱실거리는 환자들까지 시내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는 건 불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 약국이 있는 지역은 촌이지만, 시내 아파트 단지에는 공공 심야약국의 효용성이 훨씬 더 높으리라고 본다.”며 “어떤 이들은 슈퍼마켓 의약품 판매가 대안 아니냐고 말하지만 비전문가가 의약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부작용 등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공공 심야약국의 앞날을 어떻게 될까. 김 약사는 “의원과 약국이 조합 형태로 뭉칠 수도 있고, 119와 약국, 병원이 연결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박 의원 역시“심야 공공약국은 공공의료의 밑돌”이라며 “가정 의원과 약국이 연결돼야 한다. 아프면 누구나 진찰받을 수 있도록 약사와 의사들이 공공의료지원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주도특별자치도 권역별 우리동네 공공 심야약국 자세히 보기
※2014년도 공공 심야약국 지정 현황 △제주시 동지역: 부부온누리약국, 새우리약국, 화북남문약국 △애월읍: 송약국(3일 월, 수, 금) △한림읍: 현재약국 △조천읍: 조천약국(3일, 월, 수, 금), 영재약국(3일, 화, 목, 토) △구좌읍: 세화약국(3일, 화, 수, 목) △서귀포시 동지역: 수온누리약국, 중문한마음약국 △성산읍: 동남약국 △표선면: 온세상건강약국 △남원읍: 조광약국 △대정읍: 건강약국, 프라자약국




(서울시복지재단 웹진 천만다행 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1. Dr lucas M/D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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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

장애인식, 배려아닌 권리로 바라봐야

“나는 일생동안 아프리카인의 투쟁에 헌신해왔다.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고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나는 모든 사람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이상을 간직해왔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목표로 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소망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소망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 넬슨 만델라



장애인복지관 건립을 반대하는 아파트 주민회의 공고문

도봉구의 '명품 아파트'를 표방한다는 한 아파트 주민회에서 '지역에 장애인복지관 건립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트위터 등을 통해 알려지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입주자 대표 명의의 이 공고문에 따르면 ▲집값 하락 ▲차량통행 복잡 ▲장애인 출입으로 인한 사고위험 증가 ▲보통사람이 사는 이곳에 (장애인이)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게 이유다.

 

그들이 말한 '보통사람'은 도대체 누굴 지칭하는 걸까,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84세대의 가족 중에도 뇌졸중 등으로 인해 장애를 입은 이가 한명도 없지 않을 테고, 가족이나 친척 중에 지적장애 등 정신적 장애가 있는 이들이 없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보통의 상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서울시 25개 구 중 장애인복지관조차 없는 구가 도봉구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창피해야 할 텐데 말이다. 굳이 인권이나 법률을 들먹이기 않더라도 이런 시선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칠지, 무서울 따름이다.

 

카르텔을 형성하기 좋은 '집값 하락'을 무기로 내세운 것도 치졸하다.

그동안 일부 장애인복지관이 지역주민과 교감을 나누고 사랑방 역할을 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하기보다 다른데 치중했던 결과가 이런 문제를 야기했다는 데 대해 사회복지계 내부의 반성도 필요한 대목이지만, 과연 장애인복지관이 들어섰다고 집값이 하락했다는 근거 없는 괴담의 출처는 어디인지 궁금하다.


강원도 양양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일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강원도 양양군 하조대 해수욕장에 '하조대 희망들'이라는 장애인 숙박시설을 건립하려고 하자 양양군과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건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양양군청은 ‘하조대 희망들’이 장애인숙박시설이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이라고 주장해 건축협의를 취소했으나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허나 양양군청 측은 이에 불복, 항소하며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지속돼 내년 2월까지 건립추진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비 22억 원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한다. 사실상 건립이 불가능하게 된다. 결국 장애계단체는 지난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양양 군수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해 인권위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역 상인들의 입장에서야 ‘돈 없는 장애인’들이 와봐야 지역경제에 도움이 안될 테니 손해일 수 있겠다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꿔 장애인, 노인들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한 휴양지’라는 이미지를 홍보수단으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외국의 유명 해수욕장에는 지체장애가 있는 이들도 손쉽게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변용 휠체어 등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비치해놓는 등 장애인, 비장애인, 노인과 어린이 등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허나 이런 고민조차 없이 일부 상인들의 목소리가 전체인양 지자체가 나서서 대변하는 현재의 상황은 납득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뜨겁지만 양양군수는 요지부동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앞장서야 할 자치단체장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셈이다. 이보다 더 큰 상처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지역공동체는 회복하기 어려운 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 이제는 깨져야

 

연달아 터진 이 두 사건을 지켜보며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다. 장애인 시설 건립에 대한 반대 이면에는 고질적인 장애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들이 직접 나서 지역의 현안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허나 ‘집 값 하락’ 등 불확실한 자본논리를 근거로 내세워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목소리만 관철하려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가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의구심이 든다.

 

전 세계 몇 안 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에서 이런 장애인 차별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잘못 빚어낸 ‘장애인 상(象)’에 대한 오해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장애가 있는 사람의 상태를 일컫지만,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집단화해서 생각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무리’라는 희한한 꼬리표를 붙인다. 여기에, 나와 동급이 될 수도 있다는 듯, ‘극복’이라는 표현으로 미화하고, 때에 따라서는 동정심을 촉발한다. 이렇다보니 언론매체나 사회복지기관의 ‘장애인을 배려하자’는 구호가 ‘선긋기’로 잘못 받아들여져 시혜적인 인식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 돼버렸다.

 

물론 동정과 배려하는 마음이 항상 나쁜 뜻일 수는 없겠으나, ‘도와줄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지만, 내 상황이 안 좋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심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배려, 즉 형편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장애인 vs 일반인(비장애인)’의 이분적인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이 같은 시선은 장애인생활시설 등에 자원봉사를 다녀온 이들이 남긴 수기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불쌍한 사람’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불안한 마음’으로 출발해 ‘천사같이 맑고 순수한 영혼’을 거쳐 ‘오히려 내가 용기를 얻고 왔다’로 마무리 되곤 하지만, ‘왜 저들은 저런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가’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극히 적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라. ‘불쌍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보니, 나는 그리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들을 도울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뜻이 뭘 의미하겠는지를.

 

이렇다보니 ‘그들은’ 나와는 떨어져서 다른 공간에 사는 사람들로 의식하게 되고, 내 공간에 침범하는 것을 불쾌한 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닐까. 전국의 모든 해수욕장이 보행약자도 출입이 편하고 손쉽게 묶을 수 있도록 설계됐더라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복지관이었더라면…. 짚어봐야 할 숙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은 법으로 정해놨기 때문에 지켜져야 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살아가는 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할 원칙이다. 불쌍하면 떡 하나 주고, 내가 어려우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 원칙이 잘 지켜지도록 홍보하고, 독려하는 일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몫이다.

 

이제는 배려가 아니라 권리다. 참다운 민주주의 국가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서울시복지재단 웹진 천만다행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회복지

사회복지기관 서열평가, 시대 흐름과 안 맞아

사회복지계 집단지성 “서열화 인센티브 경쟁 중심 평가, 폐지해야” 한 목소리


벌써 20여년 전, 군대 있을 적 이야기다.

유격과 더불어 고통스러운 순간, 검열이 다가왔다. 내무반에 있는 치약과 구두약 동원령이 떨어졌고, 고철장수도 외면할 물건들이 번쩍번쩍 새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행정병들은 24시간 근무에 돌입한다. 인수인계 안 해준 선임병을 원망할 겨를도 없다. 이런 서류가 있었나 싶었던 것들까지 찾아 날짜별로 정리하고 사인을 하는 등 채우기 작업에 열중한다. 듣도 보도 못했던 교안과 교육들이 곳곳에 삽입하고 나니 ‘내가 정말 이렇게 일을 많이 했나’라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혹시나 ‘끼워 넣기’한 흔적이라도 남을까 커피도 묻히고, 흙에 비벼 얼룩도 입히고…. 그렇게 며칠 밤 낮, 실적도 많은 완벽한 서류를 들이 밀었으니 나쁜 결과가 나오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남은 것은? ‘우수부대 표창’이 붙어있는 텔레비전 하나, 평가가 부대원들과 전투력 향상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누구를 위한 평가인가

평가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다. 평가를 통해 뒤돌아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작업물을 보며 적당한 긴장감과 자극도 받을 수 있다. 또 문제점을 파악해 더 좋은 길로 나갈 수 있다.


사회복지기관을 대상으로 한 평가 시스템이 도입됐을 때만 하더라도 긍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서로 노력했기 때문에 (비록 서류상이라 할지라도) 상향평준화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좋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발굴하고, 일선 사회복지사를 독려하기 위한 평가제도가 변질돼 사회복지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몇 년간 진행한 사업을 평가지표에 맞춰 새로 서류작업을 해야 했고, 이에 매몰돼야 하는 상황에 실망한 사회복지계 인재가 현장을 떠나갔지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알 수 없는 공감대로 인해 모두가 올인하는 상황,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들은 했으나 평가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것이 우리의 현주소였다.


이런 분위기를 소셜미디어가 깨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평가를 혁신하자’는 그룹이 생겨난 것이다. 말 그대로 사회복지기관 평가를 새롭게 정립하고 평가의 틀을 개혁하자는, 사회복지사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모토는 간단하다. ‘경쟁대신 공생으로 평가를 혁신하자’다. 더 이상 줄 세우기 경쟁평가 대신 공생평가로 사회복지의 가치를 제대로 세우자는 게 핵심이다. 지역주민과 함께 축제처럼 평가하고, 동료들이 진행한 우수 사업들을 평가하면서 서로 나누고 배울 수 있는 공생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지금까지 그룹에 가입한 이들만 350여 명, ‘평가를 혁신하자’는 서명운동에 자발적으로 동참한 이들만 한 달여 사이 600여 명을 돌파했다.

그간 보건복지부 등 정부시책에 유독 저자세를 보였던 사회복지계를 생각해보면 모임자체가 ‘혁신적’이다.




“요즘 시대는 등급이 높다는 것보다 어떤 가치를 갖고 있으며, 얼마나 이 가치를 담아내는 훌륭한 이야기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중요함을 판단하는 시대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바뀌었다. 그런데 여전히 (사회복지계에서는) 점수와 등급으로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하는데 이 방식은 성공하기 어렵다”


이 운동을 처음 제안한 푸른복지사무소 양원석 소장은 ‘더 이상 시대착오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진 평가에 휘둘리는 꼴을 사회복지사로, 사회사업가의 자존심으로 참을 수가 없다’며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양 소장의 생각이 사이버 공간을 통해 알려지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나섰다. 페이스북이라는 SNS 미디어에서 시작됐으나 입에서 입을 통해 퍼져나가기 시작해 서울과 경기, 부산 등에서 ‘공생평가 혁신을 위한 오프라인 모임’이 열렸으며 다른 지역에서도 모임을 준비 중이다. 이뿐만 아니라 ‘평가를 혁신하자’는 글귀가 담긴 ‘얼굴사진 파도타기’ 캠페인이 진행됐는가하면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의 인터뷰가 공유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뜻을 확산시켜나가고 있다.


이 과정서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출석부나 데이터 조작은 애교수준이다.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꾸미고, 실적을 부풀리고, 심지어 낡은 종이처럼 보이기 위해 물을 뿌려 햇볕에 말렸다는 경험담까지…. 사회복지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만한 ‘편법 조장’에 대한 자아비판이 쏟아졌다.


물론 평가하는 입장에선 ‘평상시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항변할게다. 허나 기관이나 기관장의 체감온도는 매우 다르다. 평가결과에 따라 기관장 및 기관의 생존권이 박탈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서 좋은 점수를 받기위해 기를 쓰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상황이 이러니 기관을 이용하는 이들보다 평가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일 테고,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가치 있는 사업보다 수치화하기 좋은 사업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10여 년, 곪을 대로 곪아버렸다.




줄서기 경쟁대신 공생이 해답

우스갯소리로 ‘살생부’가 될지도 모르는 이 모임에 기관장부터 예비 사회복지사까지, 많은 사회복지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3번의 평가를 경험하면서 느낀, 더 이상 물이 썩기 전에 퍼내야 한다는 절박감, 이심전심의 마음이 통한 것이리라.

진정성에 대한 화답일까, ‘또 이러다 말겠지’란 부정적인 인식이 상당했던 처음 상황과 달리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등 직능단체까지 ‘평가 혁신’에 동참할 기세다. 사회복지계 집단지성이 이뤄낸 작은 성과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여론은 이미 공론화됐지만, 그렇다고 평가혁신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사회복지계는 아주 소중한 자양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야기할 수 있구나”, “우리도 모여서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이슈를 만들어내고 공론화 시킬 수 있구나”라는, 새로운 방식의 소통구조를 만들어 낸 귀한 마중물 역할을 했다.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특화된 사업을 기관끼리 공유할 수 있는 계기로서의 평가는 불가능할까.”라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들을 하자고 나서기 위해 혹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감수하면서 앞장서 준 분들께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공생평가, 반드시 이뤄야 할 가치다.


(서울시복지재단 웹진 천만다행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회복지

사회복지계의 정치세력화, 아직 갈 길이 멀다

 

19대 장애/사회복지계 비례대표 선출 관람기

여야모두 총선 출마자를 확정짓고 선거운동 체제에 돌입했다.

비례대표 자리를 놓고 장애계와 사회복지계에 불어온 정치바람도 그 어느 때보다 거셌다. 소수계층의 목소리를 당사자가 나서서 대변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정을 위한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 후보 중에는 고개를 끄덕일만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특정단체에 대한 이익만 대변했지 대중들의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인물도 다수 포함돼 혼란을 가중시켰다.

장애계는 기존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중심으로 꾸려왔던 장애인총선연대의 문을 전 장애계로 확대해 이목을 끌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등 주요 장애계단체들이 대거 합류했는가 하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이른바 운동권 진영까지 아우르는 ‘드림팀’이 꾸려져 그 어느 때보다 장애계 이익대변 실현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사회복지계에서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등 16개 직능단체 중심으로 ‘사회복지 핵심 정책과제 20개항’을 발표하고 각 당에 공약반영을 요구했는가 하면, 사회복지사당사자를 중심으로 꾸려진 복지국가사회복지연대 등도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며 정책제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직능단체별로 ‘사회복지계 추천인사’로 각 당에 추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물론 논란도 많았다. 개인의 정치욕심을 정치세력화에 대한 열망으로 포장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고,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당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부모연대 등은 ‘장애인총선연대가 비례대표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치권 줄서기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며 후보추천을 강력히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책공약 개발 과정서 한미FTA반대, 기초법상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 등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퇴, 99%장애민중선거연대를 구성해 독자노선에 나섰다.

정치권 줄서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화 돼 ‘내가 장애계 명망가’임을 자처한 대부분의 장애계단체장이 비례대표 후보 출마를 위한 ‘눈치싸움’에 뛰어들었다. 단체별 유불리에 따라 ‘추천제’냐 ‘경선제’냐를 놓고 대립하던 장애인총선연대는 한 달여간의 진통 끝에 비례대표 후보 선출 투표에 참가할 추천위원회·배심원단 구성까지 합의를 이뤄냈으나, 민주통합당 9명․새누리당 13명만이 지원하는 등 흥행에 실패했고, 장애인총선연대가 추천한 후보가 모두 비례대표 순번에 못 들어갔다. 반면 장애인총선연대를 주도한 양대 장애계연합단체장은 장애인총선연대의 룰 대신 개별 공천을 신청해 비례대표 2번을 배정받아 사실상 19대 국회입성이 확정됐다. 이에 반발한 장애계단체들의 탈퇴가 이어지고 있어서 사실상 좌초의 수순을 밟고 있다.

사회복지계의 경우는 더욱 초라하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김용익 교수 등이 사회복지계 인사로 분류돼 그나마 체면은 살렸으나, 새누리당 이봉화 복지부 前 차관은 구설수로 인해 결국 낙마했다. 또 공천 신청 이전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과 한국사회복지관협회 회장의 국회 입성도 실패로 돌아갔다. 여야모두 직능단체장 경력 이외의 특별한 이력이 없을 경우 비례대표 후보에서 우선 배제했다는 후문이다.

장애계가 공정성과 신뢰에 대한 논쟁이 주를 이뤘다면, 사회복지계는 직능단체장의 비례대표 출마에 관한 논란이 쟁점화 됐다. 이 논란은 페이스북 등 SNS와 한국사회복지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도 뜨겁게 달궈졌는데, 어떤 이들은 사회복지사 처우개선이 몇 년째 공전을 거듭하는 이유를 현장출신 사회복지계 국회의원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고 이들 회장의 출마를 환영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회원들의 추대로 당선된 협회장이 회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특정 정당의 비례대표로 출마했단 사실을 문제 삼으며 반대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야 대선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기 때문으로 풀이되지만, 정치권 입장에서야 표로 직결되는 협회장 출신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많은 회원조직을 거느린 직능단체연합회장의 경우 영입 그 자체가 표로 집결될 수 있고, 협회장까지 거치며 이미 최소한의 검증과 정치력 등에 대해 인증 받았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직능단체장이기 때문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논리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직능단체장이 아무리 회원들의 투표를 거쳤다고는 하나 해당 영역 전체를 대표한다고도 생각하지 못하겠다. 이 때문에 ‘회원들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어서 비례대표로 출마하게 됐다’는 주장에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회원들을 상대로 의사를 물었는지에 대해 되묻고 싶다. 맹목적인 특정영역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주장이 개인의 욕심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 이유다.

장애인총선연대를 구성하게 된 당초 취지를 되돌아서 생각해보자.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차별과 멸시 속에 살아왔던 아픔을 이제는 ‘남이 아닌 내 목소리’로 바꿔보고자 정치세력화를 부르짖기 시작했고, 그 결과 17대 장향숙, 정하원 의원에 이어 18대 박은수, 곽정숙, 이정선, 정하균 의원 등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들의 국회입성을 통해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특히 전 장애계의 염원이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때는 이들의 노력이 한몫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이 장애인당사자의 편에 서기보다 특정 정당의 입장을 먼저 대변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장애인당사자의 정치세력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장애계 명망가’ 1명을 국회에 입성시키는 것이 장애계에 어떤 득이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사회복지계에서도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이에 반해 협회장의 비례대표 출마에 대한 논란은 의외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특정인을 찍어 내리기 위함’이라는 오해와 불신을 반목시키기 위해서라도 정관 등에 대표의 정치출마에 대한 규정을 삽입하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출사표를 던지고 싶은 이는 논의된 절차에 따라 신청하면 될 테고, 회원들도 자신의 뜻에 따라 지지한다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과정은 엄청난 진통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지난 몇 년간 장애계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한 장애계단체장이 자신의 출마선언과 동시에 회장직을 사퇴했다. 조직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이 후보는 비례대표 후보에 들지 못했으나, 회장직 사퇴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이 단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 회장이 차기 장애계 몫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고 나선다면 대중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반면교사를 삼을만하다.

자신의 영역을 대변할 수 있을만한 인물을 국회로 보내자는 논의가 논쟁과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는 결국 ‘내가 국회에 가게 된다면 이렇게 바꾸겠다’는 주장이 설득력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만 되면 나타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려울 때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게 대중들의 심리인데 시작서부터 뒤틀린 것이다.

비례대표도 선정된 마당에 굳이 과정문제를 들먹이냐는 불편한 시각도 감지된다. 그러나 장애계와 사회복지계의 진정한 정치세력화를 위한 작업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예전처럼 ‘닫힌 체계’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고, 열린 마음으로 더 많은 당사자들과의 논의를 통해 원칙을 만들어낸다면 이번처럼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으리라고 본다.

우리를 대표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우리 손으로 만든다, 생각만 해도 뿌듯하지 않나. 비록 가는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말이다.

(서울시복지재단 웹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회복지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부양의무자 기준, 이대로는 안 된다

지난 12일, ‘부양의무가 가능한 아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하게 되자 이를 비관해 조모(64)씨가 자살한 데 이어, 18일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해오다 윤모(74)씨가 딸들의 소득이 잡혀 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하자 다리 난간에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 선정 과정서 부양의무자, 즉 부모나 형제, 자식 등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의 재산과 소득상태를 확인해 일정기준 이하여야 선정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의외로 모르는 이가 많다.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정망이 기초법이건만 왜 가족의 재산 상태를 파악한 후 선별적으로 지원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족의 문제는 가족이 해결해야 한다’는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이 크다. ‘공공부조’와 필연적으로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부양의무자 기준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의 기자회견 모습. ⓒ정두리 기자

지난 2002년 중증여성장애인이자 노점상,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였던 故 최옥란 열사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다 음독자살한 이래 ‘기초법 상 부양의무자 기준’ 문제는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지난 6월 국회에는 많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당사자, 국회의원이 합심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골자로 한 기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통과하지 못했다. 국가가 책임지기에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고, 가족이 부양하는 한국사회의 전통을 깰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결과 디스토피아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조씨는 30여 년 전 부인과 이혼한 후 아들과 연락이 끊어진 채 생활해왔다고. 하지만 서류상의 아들에게 부양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유일한 ‘생존줄’이던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를 통보받았고,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 역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무료로 노인요양시설을 이용해왔으나 딸 5명의 소득이 드러나며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자격을 잃게 돼 80만원에 달하는 요양시설 이용료를 윤씨나 윤씨 자녀가 내야할 상황에 이르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조씨와 윤씨의 죽음 뒤에는 지난 5월부터 실시한 ‘부양의무자 확인조사’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까지 접수된 ‘행복 e음’(사회복지통합전산망)의 공적자료를 적용해 부양의무자의 소득 및 재산을 전면 재조사한 결과 본인과 부양의무자 소득의 합계가 각각 최저 생계비를 합한 금액의 130%를 넘는 10만 명의 급여 삭감 및 수급탈락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불량 양심’을 솎아내기 위한 일상적인 작업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부처예산요구액에 따르면 ‘기준완화로 6만1,000명을 늘이는 대신 부양의무자 재조사를 통해 4만5,000명을 줄이겠다’고 밝혀 현재 추진 중인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현행 최저생계비 130%에서 185% 미만으로 확대하려는 방침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장애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던 장애인연금법 도입 과정에서도 그랬다. 당시 정부는 장애인연금 수혜자를 확대하는 대신 ‘부정 수급자’ 이유를 들어 장애등급 심사를 강화해 탈락한 이들의 민원이 빗발쳤고, 이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돈 많은 부양의무자가 있음에도 불법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온 이가 많다’는 식의 단편적인 논리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아랫돌 빼 윗돌 괴는’식의 행정을 감추기 위한 언론 플레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70세 노인이 90세 노인을 부양해야 하고, 40세를 훌쩍 넘긴 중증장애인 아들을 70세 넘은 노모가 부양하고 있는 현장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부모를 내친 사례도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밖에 없고, 자식이 부모를 외면하게 된 이면의 가정사를 어떻게 ‘불량 양심’으로만 몰아세워 재단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한다 하더라도, 당사자의 난처한 상황을 먼저 고려해 우선 지원하고 나중에 징수하는 등의 방식도 제시할 수 있었을 텐데 이에 대한 고민은 찾기 힘들다. 또 자신의 가족조차 건사하기 어려운 상황 때문에 부모의 의료비나 생활비를 감당 못해 눈물 흘리는 가정도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부양의무자 기준은 예외 없이 부양능력이 있다고 간주해버리고, 수급자의 수급권을 거부한다.

지난해 10월 중증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아버지가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으나, 그 돈으로도 아이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리자 ‘아들이 나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내가 없어져 아들이 정부에서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가정형편 등의 이유로 버려지다시피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생활하다 지역사회로 나오려고 했으나 부모 재산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사례역시 숱하게 많다. 늙은 노모가 공공근로라도 하면 자식의 수급비가 끊어지거나 반 토막 나버려 부모와 자식이 원수 대하듯 하거나,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지금 이 땅,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어떤 이의 하루 술값도 안 되는) 40여만 원의 돈을 국가에서 받기위해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처지에 놓여있는지를 여기저기에 구구절절 설명하고, 가족의 자존심마저 내팽개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를 두고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는 것은 현장의 체감온도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40여만 원의 돈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103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중 절반 이상은 자녀나 부모의 도움조차 못 받아 수급권자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건만 이들을 계속 내몬다면… ‘죽음의 도미노 행렬’이 목전으로 다가온 듯해 가슴이 서늘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개정을위한공동행동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하며 ‘기초법 부양의무제 폐지 촉구 및 빈곤층 죽이는 보건복지부 규탄 총력 결의대회’를 5월 26일 복지부 앞에서 열었다. ⓒ최지희 기자

하지만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꽃을 본다.

비록 선언적이기는 하나, 전국 1만4,497명의 사회복지사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촉구에 동참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기막힌 현장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좀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던 사회복지종사자들이 나선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서 탈락하거나 액수가 깎여도, 자신의 억울함을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 힘든 위치에 있는 이들을 대신해 사회복지 현장 일선에 종사하는 이들이 앞장서서 대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기초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410만 명에 달하고,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삶을 살아가다 이를 비관해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의 숫자가 OECD국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현실을 사회복지종사자들이 앞장서 중계한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눈으로 보고, 느낀 현장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사회복지종사자들의 입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다면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상급식'과 관련해 '복지논쟁'이 뜨겁게 가열됐으나 현장의 최일선에 서있던 사회복지종사자들은 제 목소리를 못냈다. 아니 매우 늦게서야 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번에는 안된다. 먼저 움직여야 하고, 앞장서야 한다. 그 누구보다 현장의 상황을 잘 아는 우리들이 목소리를 내지않는다면 직무유기다. 사회복지의 가치를 스스로 내려놓은 행위다. 빈곤의 책임을 더 이상 개인과 가족에게 떠맡기지 말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이제는 사회복지종사자들이 앞장서서 외쳐야 할 때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시다 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 드리며, 부디 그곳에서는 돈 때문에 슬퍼하는 일 없이 행복하시길 간절히 빈다.

(서울시복지재단 블로그에 실린 글을 약간 수정해 올립니다.)

  1. 들장미 M/D Reply

    기초수급자..이런걸 돈있거나 내 자식 내가정 잘 건사한 노인이 그 돈 받으러 사정하러 다니겠나요..
    위에서 해먹으니 국민이 다 사기꾼으로 보이십니까..
    에휴 죽음으로까진 몰고가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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