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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

장애인 시설투쟁의 시작, s재단과의 싸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해오는 단체인데 (나이를 떠나) 존경하는 활동가들 가득하다.  


발바닥이 활동한지가 벌써 10년. 이를 맞아 발바닥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오늘 메일링으로 받은 내용은 S재단과의 싸움. 나도 이때부터 시설민주화 기사를 쓰기 시작했기에 남다른 감정이 들어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메일로 온 내용을 복사해 이곳으로 옮겨 소개한다. 





비리와 인권침해로 얼룩진 S재단과의 첫 번째 싸움 : 

2003년-2004년 

       
           
   

 2003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내부고발을 시작하다. 


  우리가 미신고시설과 조건부로 등록한 시설의 인권문제로 몰입해 있을 때, S재단노조에서는 여러 차례 장애인단체나 인권단체를 방문하여 S재단의 비리와 인권침해를 알리고 도움을 호소했다. 노조원들이 말하는 인권침해 내용을 들어보면 여느 미신고시설의 인권문제와 비슷했지만, 그 규모면에서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1984년 정신요양원으로 시작한 S재단은 그 당시 산하 기관이 13개, 1000여명이 넘는 장애인이 살고 있었고 정신병원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국가로부터 받는 보조금도 년간 100억원이 넘었다. 비리와 인권침해를 제보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고 모인 직원의 수도 200여명이 넘었다. 미신고시설과의 싸움이 작은 국지전이라면 대형 사회복지법인인 S재단과의 싸움은 마치 세계대전 같았다. 

  S재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철원과 그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었다. 복지나 장애를 잘 알아서 취업 했다기보다는 철원지역에 이렇다 할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취업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기혼여성들이었는데 그저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자식 키워본 경험으로 장애인을 돌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 순박한 사람들을 투사로 만든 것은 노동착취와 인권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터진 이후였다. 

  S재단은 1997년 5월, 시설직원들에 의한 집단폭행으로 최ㅇㅇ이라는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이미 보도된 적이 있었다. 폭행·사망하였음에도 S재단에서는 사망진단서를 허위로 발급하여 자연사 한 것으로 감추려고 했고 이것까지 밝혀지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노조가 결성되기 전에도 양심적인 직원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상을 알리고자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누구누구는 감독기관인 종로구청에 민원을 넣기도 하고, 경찰서에 제보도 했지만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었다. 그 당시 공익제보라는 개념조차가 낯설던 시절이었다. 양심적인 사람들의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2002년 말 비밀리에 노조가입서가 직원들 사이에 돌았고, 2003년 2월 23일에는 직원 400여명 중 244명이 대거 노조에 가입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되었다.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글> 
  
(중략) 이곳은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곳으로 추위가 극심합니다. 그러함에도 에너지절약 한답시고, 하루에 한시간 정도 외에는 난방을 돌리지를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릇에 담아 놓은 물이 얼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장애인들 중에 동상이 안 걸린 이들이 없을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오거나, 외부에서 손님이 올 때면 난방시설을 작동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겨울에 난방시설이 얼어 터졌겠습니까?  

(중략) 대소변을 못 가린 이들이 있어 기저귀가 꼭 필요함에도 요양원측에서는 일절 제공이 없었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직원들이 개인 돈으로 산 기저귀마저 압수를 했습니다. 장애인들의 의식주는 이렇게 뒷전으로 밀린 채 더 심하게는 개인의 영리목적을 위해 직원들과 일부 지적장애인들을 이용해 요양원내에 소를 100여 마리나 키웠고, 장애인들을 돌봐야 할 시간에 직원들을 강제로 이사장 개인소유의 밭을 경작하게 했습니다.  

(중략) 저희들은 지난 세월동안 신체장애인들과 정신장애인들의 보금자리로서 공공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개인의 이윤추구의 공간으로 변해 버린 것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하면서 다시는 성람요양원이 원생들을 볼모로 몇몇 개인의 이윤추구의 장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이러한 잘못된 모습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낼 것입니다. 국민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2003년 3월 27일 
ㅁ,ㅇ 요양원 노동조합에서 드립니다. 
       
           
   
       
           
   

[사진설명 : S재단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노동권 문제를 넘어서, 복지시설안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인권침해와 비리의혹을 고발했다. 2004년 7월 23일 노동조합과 연대단체들은 검찰청 앞에서 S재단의 이사장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사장의 부인을 세탁원으로 이름을 올려 인건비를 1억4천만원을 횡령했고, 이에 대해 서울시는 환수조치만 하고 검찰고발은 하지 않았다. 이에 노동조합이 직접 고발하자, 검찰 또한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사진설명 : S재단의 인권침해와 노동력 착취, 비리의혹에도 불구하고 감독기관인 서울시와 종로구청, 감사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조합원들은 50여일간을 서울시-종로구청-감사원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호소했다. 이후 2년이 지난 후에야 이사장은 27억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되었다. 또한 시설직원의 성폭력 사건도 밝혀졌다. 노사갈등일 뿐이라며 외면했던 종로구청은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그제서야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162명의 소리 없는 죽음 

  직원들이 호소한 문제들은 이러했다. S재단의 시설들은 중증장애인이 살고 있는데도 겨울에는 난방을 가동하지 않아 너무 추워서 근무하기가 힘들었고, 봄가을에는 직원들이 장애인을 지원하는 본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장 개인 농장에서 일했다. 이사장은 직원들만 동원한 것이 아니라 노동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장애인들도 동원했고, 장애인의 하루 임금은 5천원 때론 1만원 때론 솔담배 반갑 이었다. 이사장이 직원을 농사일에 동원하는 동안 시설에 방치된 중증의 장애인들은 변기의 물을 마시거나, 내내 묶여있거나, 다치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는 장애인들이 많았는데 감독기관인 종로구청의 통계에 의하면 9년 동안(1995년부터 2003년까지) 162명이 사망했다. 1년에 18명씩 사망한 셈이다. 추운 겨울에도 하루 한 시간 정도만 난방 했기 때문에 온종일 바닥에 누워있어야 하는 와상장애인은 동상에 걸렸다. 어느 노조원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씻기는 자기 손도 이렇게 시린데 찬물로 씻는 장애인의 몸은 어떻겠느냐’며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느 노조원은 ‘우리들은 발 시리다고 실내화를 신고 다니는데 지적장애인들은 신겨놓은 양말도 다 벗어버려서, 자신은 출근하자마자 장애인의 바지와 양말을 꿰매놨다가 퇴근할 때 뜯어 놓고 간다’고 했다. 

  얼굴도 볼 수 없었던 조 이사장은 가끔 시설에 와서 사무실과 자기 농장의 소만 보고 갔고, 100마리 넘는 소의 먹이를 쌓아놓느라 직원들과 일부 장애인은 늦가을까지 총 동원됐다. 소 키우는 일에 동원된 장애인은 축사 옆 숙소에서 기거하면서 축사일과 불법 도축까지 해야 했다. 그곳에서 생활했던 고인이 된 故 지영씨의 인터뷰에서 그곳의 일상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밥오는 소리가 구르마 소리야, 병원 카터 처럼. 카터에서 식판에다 군부대 식판 같은거 거기다 밥이 딱 나오는데,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밥이 나왔어. 다 썩은 콩나물에, 하얀 콩나물은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콩나물 무침에. 기름은 둥둥둥둥 뜬 그 배춧국, 그런 국에 김치는 군내, 그때가 5월이었거든. 5월 초였는데 그때까지도 김장김치를 주는데 그것도 아주 잘잘하게 다진 김장김치였는데 군내가 났어. 그걸 먹으라고 주는 거야. 그것을......” 

- 2007년 고(故) 지영씨의 인터뷰 중에서 - 
       
           
   

[사진설명 : 2014년 고인이 된 지영씨는 S재단이 운영하는 중증장애인요양원에서 7년동안 생활하다가 자립했다. 그녀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밥을 주는 것에 항의하기 위하여, 거주인들을 조직하여 요양원으로 자장면을 배달시켰다. 배달된 자장면이 들어오려면 정문을 통과해야 했었는데, 그녀는 사무실에 가서 '우리가 자장면을 시켜먹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며 항의하여 간신히 배달원이 정문을 통과할수 있었다. 그들에게 도착한 자장면은 '허락'을 받느라 불어터져 있었지만 그녀는 시간이 꽤 지난 후에도 이 에피소드를 재밌게 이야기 하곤 했다. ]
       
           
   
       
           
   

[사진설명 : 직원들이 이사장 개인의 농장일에 동원되는 동안 발달장애인 50여명당 4명의 직원이 배치되었다. 한 층에 4명씩 남겨진 직원들은 장애인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이유로 손목을 뒤로 묶어 두었고, 묶인 손목을 잡아당겨 끈이 조여져서 장애인이 다치기도 했다.]   
       
           
   

[사진설명 : S재단이 운영하는 S정신요양원의 거주인들. 2006년 현애자국회의원실과 S정신요양원에 들어가려 하자, 입구를 막고 인권단체사람들은 들어올수 없다고 했다. 정문의 창살안으로 보이는 요양원의 운동장에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느린 걸음으로 돌고 있었다. 이들이 표정과 걸음걸이에는 사람의 생기라고는 찾아볼수 없었다. 이들의 남루한 옷차림과 까칠한 피부에서 이들이 어떤 처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선수투입, 군출신이 복지시설을 장악하다. 

  244명의 내부고발자가 생기자, S재단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S재단은 조직을 주도하던 직원들 18명을 부당해고 했고, 20여명을 부당 징계했다. 부당해고 당했던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이 걸려 승소했지만 복직 후 다시 부당해고 당했고, 부당 징계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S재단은 노조와의 협상과 요구에 성실히 임하는가 싶더니, 이어 군 출신의 시설장과 관리자들을 채용하여 노조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월간 <함께걸음> 기자가 S재단 산하 ㅁ장애인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만난 재단 측 관계자는 “노조문제 해결 하려고 군 출신 불러들인 것이다. 사회복지나 하는 유약한 원장이 노조원들을 당해 낼 수 있겠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함께걸음 2007.1.9.일 기사참조) 

  그러나 S재단은 노조가 제기하는 문제를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이사장 개인 농사일을 하지 않았다. 근무시간에 장애인을 지원하는 본래의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되자 S재단은 키우던 소 100마리를 팔아버렸다. 장애인에 대한 열악한 처우들은 국가보조금이 적다는 이유로 S재단이 빨리 개선하지 않았지만 노조의 존재 자체는 S재단의 무소불위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S재단은 조합원들을 개인적으로 협박하여 조합을 탈퇴시키고, 노조에 대한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었다. 관리자들은 야간근무 중에 조합원들의 사물함을 뒤지는가 하면, 꼬투리를 잡아 조합원들에게 시말서를 강요했다. S재단에서는 노동조합이 소속된 ‘금속노조 경기북부지회’를 문제 삼아 ‘장애인이 금속이냐, 왜 사회복지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했냐, 금속노조가 조합비를 챙기려고 수를 쓴 것이다’고 떠들기도 했다. 당시 S재단 노조는 지역 내 공공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공공노조와 상의하여 지역지회가 있었던 금속노조에 가입한 상황이었다. S재단에서는 노동조합의 그 무엇도 꼬투리 삼고 싶었으리라. 

무엇이든 노사갈등으로 몰아가는 감독기관 종로구청과 서울시 

그런데 정작 문제는 관리감독을 해야 할 종로구청과 서울시, 복지부의 태도였다. 노조에서 호소하는 문제들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S재단의 모든 문제를 노사문제로 귀결시켰다. 노조에서 국고보조금을 어떻게 횡령하고 있는지, 인권침해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제보해도 모든 것을 노사갈등으로 몰아갔다. S재단이 운영하던 송추정신병원이 과징금을 물게 된 데 대해 당시 현애자국회의원실에서 질의하자 복지부 담당자는 “아마 몇 천 만원의 과징금을 물게 될 것이다. 그 이상 더 많이 물려서 송추병원 문 닫으면 그 환자들은 어쩌란 말이냐”라고 대답했다. 그 시설과 정신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수용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괴기한 인식이 담당 공무원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입술을 꼭 깨물며 참아 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열심히 싸워서 저 추운 요양원 안에 있는 원우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사람답게 살수 있다면,  그리고 그토록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고 사측의 노예처럼 일만해야 했던 그 암울하던 시절을 위하여서라도 여기 모인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쌍한 원우들을 무기삼아 이제껏 삶을 영위하고 있는 저 악독한 이사장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것을 꼭 볼 것 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이 고통을 참고 또 참아서라도 끝까지 싸워서 우리 장애원우들의 인권도, 우리 짖밟힌 노동자들의 인권도 반듯이 찾을 것입니다. " 

- 당시 지역 주민들에게 호소하는 조합원 J씨의 글 중에서 - 
       
           
   
       
           
   
2004년, 질긴 놈이 되자. 

  노동조합의 호소만으로 정부와 사회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노동조합에서는 2003년 말, 철원과 송추 등 경기 북부지역의 단체들과 <비리재단, S재단 퇴진과 민주재단 건설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시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나갔다. 그러나 조 이사장은 지역 안에서 유력 인사였다. S재단 사무처장은 “철원지역에서 철원군을 제외하고는 제일 큰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경찰서장과 군청과장, 경찰서 정보과장 등이 인사청탁을 해온다”(함께걸음 2004.8.1. 기사중 S재단 심ㅇㅇ사무처장 인터뷰)고 말할 정도였다. 사태를 해결하려면 지역을 벗어나야 했다. 더욱이 시설은 철원과 송추에 있었지만 감독기관은 서울시와 종로구청이었다. 노조에서는 서울에서 이 문제를 이슈로 만들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조합원들은 간간히 서울에 와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급기야는 ‘도보순례’라는 이름으로 매일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서울시청-S재단-종로구청-감사원을 돌면서 문제를 호소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에서 고발하는 건건마다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고, 감사청구를 해도 감사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노조에서는 계속해서 연대할 단체들을 찾아다녔다. 노동조합의 끈질긴 노력으로 다시 한번 전국단체로 다시 연대조직을 결성했다. 2004년 <장애인인권회복·S비리재단 퇴진과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였다. 그러나 다시 구성된 연대조직에 참여한 단체는 경기북부지역의 단체를 제외하고는 에바다학교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전부였다. 2004년 당시에는 사회복지법인의 비리와 인권침해에 맞설 단체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소수의 단체가 모였지만, S재단의 총체적인 비리와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계속 열었다. ‘질긴 놈이 승리 한다’는 명제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요양원 자식들은 소만도 못한가요? 

2003.3.27
박정혁 
(전 ㅇ요양원에서 거주인) 

이사장 아버지가 서울서 오신데요.  
요양원원장님의 구수한 방송 멘트.  
"각층 보모 선생님들은 
서울서 이사장님 일행이 오신 다니까  
원생들 복장 단정히 해주시고  
각 구역 청소 깨끗이 해주세요!"  

이사장 아버지가 우릴 보러 오신데요.  
엄마들은 바쁘게 가운을 걸쳐입고 엄마들은 맡은 아이 하나하나살펴요.  
새옷 한벌 못 구해 입힌것도 자신들의 죄인양  
옷장을 모두 열고 
가장 좋은 옷을 골라도 
누군가가 입다 가져온 헌옷들만 나와요.  
엄마들은 더 바쁘게 
맡은 구역 열심히~열심히  
쓸고 닦고 그것도 모자라  
뒷산 우사 가는 길에는 
먼지 하나 없도록 쓸고 또 쓸고  

이사장 아버지가 서울서 오셨데요.  
요양원 원장님의 또다른 방송멘트.  
"각층 보모 선생님들은 
이사장님 일행이 곧 착하시니까  
당번만 남으시고 
모두 현관으로 내려오세요!"  

이사장 아버지가 우릴 보러 오셨데요.  
엄마들은 아이들 밥 먹여 주다 말고,  
엄마들은 바삐~바삐 청계단을 내려가요.  
가슴엔 불평불만 가득가득 품고서  
초조한 걸음으로 바쁘게 현관으로  
각방에 남겨진 밥숟갈들의 원성이 
엄마들의 귓가에 메아리쳐 울리네요.  

이사장 아버지가 서울서 오셨데요.  
검은 승용차에서 무거운 몸 내리셨는데  
검은 우산 쓰시고서 눈길 한번 안주네요.  
성큼성큼 엄마들을 외면하시고  
요양원의 자식들은 거들떠도 안보시고 
이사장 아버지는 소만보고 가셨데요.  
       
           
   
[사진설명 : 위로부터 1~5번 사진. 1번은 장애인들이 동원되어 불법도축하던 장면. 2번은 요양원과 주변 이사장의 땅에 건축, 청소, 수리 등에 동원됐던 사진. 3번은 이사장의 농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 4번은 직원들이 농사일에 동원되는 동안 방치된 장애인이 넘어져 머리를 꿰맨 모습. 이후에도 같은 사고가 여러차례 발생. 5번은 거주인의 양말.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애인의 양말이 다 헤져서 뒤꿈치가 나와 있는걸 볼수 있다. 
       
           


장애인복지

발달장애인 일자리 유행과 바람

얼마 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님과 이야기 나눌 일이 있었습니다. 현역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제주에 내려온 지도 어언 3년째인지라 장애계 돌아가는 소식도 궁금하고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이것저것을 여쭸더니 ‘협동조합’과 ‘바리스타 교육’ 말씀을 하십니다.  어떤 연유로 바리스타와 카페가 유명세를 떨치게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많은 발달장애 자녀와 부모님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후 뜻 맞는 분들이 모여 자본을 만들어 카페를 열거나 오픈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게 최근 추세인 듯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제주도는 ‘카페의 천국’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커피 맛으로 승부하며 인기를 끌던 커피숍이 상당히 많은데 최근에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답니다. 최근 들어 유명 대기업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입점공세와 임대료 부담 등으로 힘들어하다 문을 닫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바리스타가 발달장애인 새로운 직업군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문득 2000년대 초반의 부모님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아이가 생활하기에 좋은(?) 생활시설을 찾거나 직접 운영에 뛰어들던 부모님들이 생각을 바꿔 뜻과 의지를 모아 직접 세차장을 운영하거나 폐지를 줍고 농장을 만드는 게 유행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쯤 사회적 기업 설립이 붐을 이뤘고, 고용 장려금이 반 토막 돼 집으로 되돌아갔던 이들이 대거 유입되기도 했었죠. 한동안은 ‘공공기관 장애인제품 우선구매’ 제도를 활용해 복사용지를 제조하는 업체나 세탁이나 청소를 대행해 주는 회사도 인기를 끌었고 제과 제빵도 한동안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모범사례로 꼽을만한 회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원금이 끊겼다는 이유로, 업무효율성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대부분이 문을 닫거나 업종변경을 했고, 치열한 생존전략을 펼친 몇 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주에도 아주 괜찮은 발달장애인이 중심이 된 카페가 성업 중이긴 하나 이런 예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제주의 영세 자영업자들처럼 자본의 논리에 밀려 사장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습니다.

 

작은 카페나 식당이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든 창업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님들이 그 고행의 길을 자초해 걷고 있는 이유는 ‘비장애인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그나마 직업조차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겠냐’는 고민 때문이겠죠.

 

그러나 회사를 만들거나 카페나 음식점 등을 창업해 당장의 일자리가 해결된다고 풀릴 문제일까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민간(발달장애 부모 당사자)에서 떠안아 발버둥 친다고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또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안 돼 아이를 위해 자본을 투자할 상황이 안 되는 대다수의 아이들은 시설 외에는 선택할 길이 없는 점도 문제고요.

 

‘발달장애인 균도와 세상걷기’로 유명한 이진섭씨와 이런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균도씨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고행에 가까운 발걸음을 옮기며 대중운동에 집중하는지에 대해 여쭸더니 “내가 아무리 애를 써봤자 환경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 균도는 대중들 속에서 살기 힘들다.”며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다 하더라도 수십억 원의 돈을 벌 능력도 안 되고, 차라리 조금씩이나마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씀 하십니다.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부모 사후의 지속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균도씨와 같이 중증장애로 인해 마땅한 직업군조차 없는 이들도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지역사회를 바꾸고 제도를 고쳐나가는 일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모두가 균도 아빠와 같은 ‘투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간 경험하셨다시피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뀌고, 부모가 없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노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십여 년 전의 부모님들이 그랬듯 없는 돈을 모으며 피눈물을 쏟아야 하고, ‘어디 좋은 아이템이 없나’ 두리번거려야 하는 일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 목소리 높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함께 하지는 못할지라도 여력 되는대로 응원하고 지지하고 힘을 보탰으면 합니다.

 

사실은, 내 아이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파라다이스복지재단 3월 기고글)

장애인복지

활동지원인 부재로 사망한 故 송국현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송국현 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차디찬 바다 어딘가에 있을 290여 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여전히 확인되고 있지 않다는 뉴스속보가 나오던 그때, 화마에 온 몸이 망가진 송국현 씨의 생명도 사그라졌습니다.

젊은 시절,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인해 장애를 입은 후 불가피하게 선택한 곳은 바로 장애인생활시설. 그곳에서 30여 년을 생활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탈시설한 송국현 씨가 지난 13일 그동안 거주하던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지난 17일 오전 630분 영면했습니다.

 

송씨의 죽음이 더 처연한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세상이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송씨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던 건 지난 10일 장애등급심사센터가 있는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 앞이었습니다. 그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긴급지원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지난 10일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 앞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와 피해자 이의신청 및 긴급지원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국현 씨. @웰페어뉴스 최지희 기자지난 10일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 앞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와 피해자 이의신청 및 긴급지원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국현 씨. @웰페어뉴스 최지희 기자


 

올해 나이 53. 온갖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대로 원하는 삶을 살고싶다는 뜻 하나로 탈시설해 지난해 10월 성동구의 자립생활체험홈에 둥지를 꾸렸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고, 언어장애가 심한 송씨가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선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수였지만 현행 기준상 장애 3(언어장애 3, 뇌병변장애 5)’인 그는 서비스 제공 대상자가 아니어서 3개월간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았으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로 기존 판정 뒤 악화소견을 확인할 수 없는 점 보행과 대부분의 일상생활 동작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이 수행하나,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때가 있으며 수정바델지수가 81~89점이라는 점 등을 꼽았는데요, 혼자서는 밥통에 통을 넣을 수가 없고 혼자서는 양치질과 목욕도 못하지만 의료적 기준이 중심인 수정바델지수는 송씨의 어려움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지난 10일 장애등급심사센터에 이의신청을 했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긴급복지 지원을 받으려고 주민센터를 찾았으나 이마저도 가로막힌 상황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화재를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복지TV김선영PD @복지TV김선영PD


@복지TV김선영PD @복지TV김선영PD


@복지TV김선영PD @복지TV김선영PD

 방안에서부터 문까지 여덟 걸음, 이를 피하지 못한 채

 

적절한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해 죽음에 이른 사건은 송 씨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210일 전라남도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박 모 씨가 활동보조인이 없는 시간에 발생한 화재로 사망했으며, 2012년 김주영 활동가도 활동보조인 퇴근 후 발생한 화재를 미처 피하지 못해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본인 스스로 피할 수 없는 중증의 장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제대로 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장애등급과 장애인과 관련한 모든 사회서비스들이 연동돼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0년부터 장애등급 재심사를 시행한 결과 36.7%에 달하는 장애인당사자들의 등급이 하락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전동휠체어가 보급되고, 활동보조서비스가 시행되면서 집이나 생활시설이 아닌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던 중증장애가 있는 이들이 다시금 장애등급에 발목 잡혀 방구석이나 생활시설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돼 탈시설을 지향한다는 국가정책이 무색할만한 일들이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송국현 씨의 죽음이 단순한 화재로 인한 사망사건이 아닌 사회적 타살로 규정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1~2급 등록 장애인만 신청할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의 신청자격 등급제한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할 예정이며, 장애인등급제도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니 어떤 식으로든 지켜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아직까지는 장애등급 판정도구를 바꾸겠다는 이야기만 나올 뿐 가장 중요한 예산계획이 빠져있어 공염불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오는 420일은 34번째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 인권단체는 600여 일이 넘도록 노숙농성을 진행하면서 장애인차별을 철폐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돈도 집도, 활동보조서비스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생활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서 살고 싶어 했던 송국현 씨의 간절한 마음이 왜곡되지 않아야 합니다. 또 그와 같은 죽음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도록 장애등급 폐지와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한 만큼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제공이 제도화돼야 합니다.

 

끝으로 그가 마지막으로 쓴 간절한 메시지를 공유합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가난과 장애로 인해 고통 받지 않은 세상서 영면하시길 빕니다. 


저는 송국현입니다. 저는 24세 때 넘어져 뇌출혈로 장애가 생겼습니다. 말을 할 수 없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살아갈 방법이 없어서 25세 때 시설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27년을 살았습니다. 지금 나이가 53세입니다.

시설의 생활은 내가 원하는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곳을 다니고 싶었고, 일하고 싶었고, 결혼도 하고 싶었습니다.

나보다 중증인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한다고 소개했을 때 너무 부러웠습니다. 자립생활을 하면 나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다는 분홍빛 꿈을 꾸게 됐습니다.

27년간 살아온 시설을 나올 때 두려워서 갈팡질팡 했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시설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첫 번째 밥을 먹는 문제였습니다. 쌀통에 쌀을 씻어 통을 들어야 하는데, 팔에 힘이 없어서 들 수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혼자서는 목욕을 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양치질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빨래도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물건을 사는 데도 혼자서는 사기가 어렵고, 사람들에게 부딪히면 넘어지기 일쑤고, 휠체어를 타야하지만 밀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밥 먹는 것부터 생활하는 것까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습니다. 야학에 가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꽃구경도 가고 싶습니다. 동료들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모임에서 나들이를 갈 때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현실을 분홍빛이 아니라 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1년 동안 체험활동을 해서 자립생활을 준비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계속 발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너무 슬픕니다. 너무 우울하고 답답해서 밤에 잠을 못잔지 오래됐습니다. 이제는 잠을 못 자서, 더 고통스러워서,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나는 너무 우울하고 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송국현 씨의 이야기. 2014.04.10 ‘장애등급제 폐지와 긴급지원대책 촉구 기자회견-


(파라다이스복지재단 웹진 아이소리 http://isori.net/ 에 기고한 글입니다.)

장애인복지

장애등급제, 이젠 폐지돼야 합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무리 하는 요즘, 한 인터넷 매체에 실린 연재글이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간병일기] 여보, 일어나’라는 코너에 실린 글인데, 희귀난치성 질환인 ‘다발성경화증’으로 목 아래가 마비돼 투병 중인 아내에 대한 남편의 글입니다.

2011년 장애판정 당시만 하더라도 지체 1급이었는데, 얼마 전 재판정 결과 5급(상지5급,하지5급, 복합장애 4급)판정을 받았답니다.‘할렐루야!’ 등급 결과만으로는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혼자서는 눕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소변도 남의 손을 빌어야만 볼 수 있다는 분이 경증장애로 호전(?)됐다고 하니 이야말로 ‘기적’아니겠습니까만, 현실은 암흑입니다.

 

이의신청을 해봤으나 ‘역시나’였고, 이로 인해 얼마 안 되는 장애수당도 중지, 활동지원서비스도 당연히 박탈됐겠죠. 그는 이야기 합니다. 몇 달 전 간질장애 4급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은 한 남성이 의정부시의 한 동주민센터서 흉기로 자해해 사망하는 사건을 언급하며 ‘공감이 아니라 공범이 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이죠.

 

최근 몇 년간 장애계 주요 쟁점을 꼽으라고 하면 ‘장애등급제’를 들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큰 이슈로 ‘장애등급제’를 꼽았고, 저 역시 이 지면을 통해 장애등급제의 부당함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장애등급제라는 게 장애가 있는 이의 몸을 의료적인 관점으로 등급을 나누고, 이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인데 속된 말로 사람이 ‘개’, ‘돼지’도 아니고, 등급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반인권적임은 분명합니다.

전 세계에서 장애가 있는 이를 등급으로 나누는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사실상 사문화됐기 때문에 장애등급을 활용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급제를 고수하는 이유는 서비스 차등지급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중증의 장애가 있기 때문에 활동보조서비스 등 각종 혜택들이 필요한 것이고, 노동을 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장애인연금 등 수당을 보조받는 것인데, 이 모든 것들이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책정하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풀어 설명하자면, 장애로 인해 받아야 할 각각의 서비스가 정해지는 게 아니라 정부의 예산과 연동해 서비스 지급대상이 결정되는 모양새가 돼 버렸습니다.

 

믿기지 않는다고요? 활동지원제도는 전동휠체어와 더불어 중증의 장애가 있는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서비스로 손꼽힙니다. 이 활동지원서비스를 제도화 하기 위해 수년전 중증장애가 있는 이들은 한강대교를 온몸으로 기어가고, 몇 날 며칠간 노숙농성을 벌이고, 삭발을 한 결과 지금의 활동지원제도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상 등의 이유로 장애 1급에게만 지원했는데, 뒤이어 진행된 장애등급 재심사 과정서 1급서 2급으로 추락하는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정부서 책정한 활동지원 예산만큼 대상자들이 탈락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지금은 이때보다 예산이 늘었고, 범위도 확대됐으나, 앞서 언급했던 글 속의 주인공처럼 ‘기적’이 일어날까 두려워 많은 이들이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활동지원제도만 그럴까요? 신빙성 떨어지는 IQ검사로 등급이 매겨지고, 이에 따라 바우처 등 차별을 받고 있는 발달장애 영역도 사정은 매한가지입니다.


  

대통령 공약한 장애등급 폐지, 가능할까

장애계의 오랜 염원이었으나 ‘들은 척도 안하던’ 장애등급 폐지 주장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장애등급 폐지’ 공약부터입니다.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다보니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지 않겠나’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분도 많지만, 장애인연금을 비롯한 각종 복지공약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당초의 약속과 달리 지난 5월 장애등급 폐지의 1단계로 현행 체계를 중·경증으로 축소한 후 임기 말인 2017년에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서 앞으로의 향방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입니다.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지금까지 ‘장애등급제 폐지’와 ‘기초법상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를 요구하며 수많은 장애계 활동가들이 광화문 광장 지하보도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진행 중입니다. 이들 뒤에는 농성장까지 갈돈이 없고, 이동수단이 없고, 활동지원인이 없어서 거리에조차 나오지 못하는 애끓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독한 농성’을 보면서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합니다. 대화로 해결하고,정책을 수반할 때까지 조금만 참으면 되는 것 아니겠냐라고 쉽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존의 문제에 내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생존을 위해 남편은 돈 벌러 가야 하는데, 이제는 활동지원인도 부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연재글 속의 주인공은 어떻게 생을 유지할까요? 내년에도 등급 외 판정이라는 ‘기적’이 일어나 더 이상 생을 살아가기 어렵겠다고 마음먹는 이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국민을 위한 국가라면 응당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줘야 하고,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국민들이 외칩니다. “장애등급제로 인한 눈물은 더 이상 쏟고 싶지 않다”고.

 

세밑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미래를 계획해야 할 지금, 생존을 위협받으며 ‘안녕하지 못한 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섬뜩한 ‘기적’으로 인해 지금도 피눈물 흘리고 있을 그들의 가정에 평안이 깃드는 2014년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이글은 파라다이스복지재단 아이소리 http://isori.net/  1월호 칼럼에 기고한 글입니다.)


장애인복지

‘굿 닥터’, 발달장애인에게 득일까 독일까

드라마 좋아하시죠?

요즘 주원 씨가 열연하는 드라마 굿 닥터가 장안의 화제입니다. 얼굴도 잘생긴데다 연기도 잘하니 큰 사랑을 받고 있겠지만, ‘자폐성 장애가 있는 의사라는 극중 캐릭터가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나 봅니다. 이를 반영하듯 자폐성 장애서번트 증후군을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기사와 관심들이 온라인을 메우고 있습니다.

 

드라마 ‘굿 닥터’ 포스터. 극중 주인공 주원이 서번트신드롬이 있는 의사로 출연해 화제를 낳고 있다


사실 자폐성 장애의 한 분야인 서번트증후군을 소재로 한 캐릭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30대 이후 세대라면 기억할만한 영화 레인 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적이 있었고, 엄정화가 출연한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도 서번트신드롬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SBS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한효주의 동생 캐릭터가 자폐성 장애가 있으면서 서번트신드롬이 있는 역할로 출연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바 있죠. 강한 임팩트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영상매체에서는 약한 듯 보이면서도 비범한 모습을 보이는서번트신드롬이라는 소재가 매력적으로 보이나봅니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이 영향력이 큰 매체에서 장애가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사례는 무척 반갑고,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면 휠체어를 타거나 다운증후군이 있는 어린 친구 등 장애가 있는 어린친구들도 함께 출연해 장애에 대한 이질감, 왜곡된 시선을 방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허나 우리나라는 벙어리’, ‘장님’, ‘애자등 장애를 비하하는 용어를 언론에서조차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서 인기 있는 배우이자 주인공이 발달장애인 캐릭터로 등장했으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게다가 자폐성 장애가 있는 친구들의 특성을 잘 반영한 연기력까지 더해지니,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지식을 깨뜨리고, 사회구성원의 한 축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라는 제작의도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서미스트리트의 한 장면. 휠체어를 타거나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도 함께 등장해 장애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기쁨이 큰 만큼 걱정스러운 점도 많습니다.

갑작스레 자폐성 장애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모습이 예전 진호야 사랑해에 출연했던 수영선수 김진호 씨와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 씨가 부각되던 때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 당시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등과 더불어 인간승리장애극복 신화등으로 소개 돼 불편해 하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가족들은 발달장애에 대해 널리 알리고, 사회 속에서 이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출구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예능은 물론 각종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겠지만, 언론이나 여론은 장애는 극복 가능한 것으로 포장해버렸죠.

방송이 나가자 경제적 여건이나 장애정도, 유형에 대한 이해 없는 대중들은 당신네 아이도 악기나 수영을 가르치면 되지 않냐.”며 주변의 지원 없이는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자신의 자녀 문제가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 아니냐는 뉘앙스의 말들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씁쓸해 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굿 닥터의 선전이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우선, 자폐는 질병이 아닌 장애임에도 불구하고 치료받으면 낳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까 두렵습니다. 일상에서 쓰이는 치료라는 뜻과 달리 언어치료, 운동치료 등 사회복지 영역에서 말하는 치료는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장애를 최소화하고, 자신을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 일환으로 스포츠나 악기 등을 이용하는 것이고, 일정정도의 기능이 향상됐을 뿐 자폐성 장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오해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입니다.

 

서번트신드롬에 대한 오해도 걱정입니다.

서번트신드롬은 앞서 언급했듯 다양한 발달장애의 유형 중 하나인 것이지 자폐성향을 가진 모든 이가 서번트신드롬, 천재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진호 씨와 형진 씨의 사례를 보고 우리 아이도 혹시 그런 능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학원과 치료실을 전전하며 좌절했던 가족들이 굿 닥터로 인해 또 한 번의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서번트신드롬이 있는 이들은 극중 주원과 같이 개선(?)될 수 있을까요?

발달장애 균도와 세상걷기라는 슬로건을 걸고 발달장애인법 제정, 기초법 상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 등을 이야기하며 전국의 발달장애인 부모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던 균도 씨도 서번트신드롬의 소유자입니다.

생년월일만 이야기하면 무슨 요일에 태어났는지 말할 수 있고, 어느 날에 무엇을 먹었으며 어떤 옷을 입고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에 대해 소상히 말할 수 있는 균도 씨도 천재성을 발휘에 주원과 같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요? 균도 씨가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속칭 천재성보다 일상생활 영위가 가능해져야 하는데 우리사회가 천재성만을 발휘해도 살아갈 수 있도록 결여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지, 아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저는 의문입니다.

 

끝으로 얼마 전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큰 반향을 얻은 동영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동영상은 미국의 한 방송사에서 몰래카메라로 찍은 영상인데, 발달장애 자녀를 데리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입니다. 각본에 의해 한 남성이 과잉행동을 하는 발달장애아에게 화를 내고, 아이의 부모님은 우리 아이는 자폐아라고 설명하며 쩔쩔내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그래도 화내기를 멈추지 않는데, 몰래카메라인지 모르는 주변 손님들은 이 남자에게 항의하며 당신이 나가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만약 한국이라면 어땠을까요?

 

발달장애인주원씨의 천재성만이 부각되고, 이에 대한 열광보다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굿 닥터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BlogIcon 구민지 M/D Reply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동영상을 사용하고 싶은데 사용해도 되나요?
    제가 어떻게 가져가는지는 잘 모르지만 가져갈수 있으면 가져가서 사용해도 될까요?

장애인복지

실효성 있는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원한다


"또 울어버렸다."

"지나왔던 길이 힘들어 운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 균도가 장애인이라는게 그리고 내가 그 아빠라는 것이 서러워 울었다."


페이스북 '발달장애인 균도와 걷는 세상이야기' 이진섭 씨의 글 중에서






지난 10월 5일 부산을 출발해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800km를 걸은 이균도·이진섭 부자가 지난 10월 22일 국회 앞 기자회견을 끝으로 3차 여정을 마무리 했다. 


이들 부자가 그동안 걸은 거리만 1,700km. 비바람을 뚫고, 아스팔트 훈기를 온 몸으로 감당하며 묵묵히 걸은 이유는 단 하나다. 발달장애인들도 이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이며, 이들도 장애인생활시설이 아닌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고난의 행군을 자처했다. 


안타까운 것은 균도씨 부자를 비롯해 장애인 부모들이 중심으로 나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으나, 장애특성상 발달장애인당사자가 전면에 나설 수 없었고,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러는 사이 대부분의 장애인생활시설은 이미 지적·발달장애인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설사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더라도 성폭행, 학대사건 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으나 사건이 터졌을 때만 반짝할 뿐 무관심에 가까운 사회분위기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보행이 불편한 뇌병변장애가 있는 동생과 화마를 피하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박지우(주의력결핍행동과잉장애, 발달장애)양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도 그랬다. 

(관련기사: 파주화재사건 남매 누나 끝내 죽음 맞이해…‘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개선 시급)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집에 두고 일터로 나가야 했던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소득기준 최저생계비 170%, 재산 8,500만원, 통장재산 300만 원 이하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한돌봄서비스도 받을 수 없었고, 장애아동양육서비스 등 국가에서 제공하는 그 어떤 사회서비스도 받을 수가 없었던 슬픈 현실에 대해서는 주목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움에서 그쳤을 뿐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짚고 해결방안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얼마 전 ‘탈시설 장애인 욕구조사’를 위해 (장애인생활)시설입소 대기자 가족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듣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생계문제로 인해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가정서부터 24시간을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에게만 매달리다 보니 나머지 자녀들이 비뚤어지기 시작해 이혼 위기에 내몰려 하는 수없이 시설행을 결정했다는 가정, 남편은 사고로 몸져 누워 있는데 자신마저 몸이 아파 더 이상 아이를 돌보기 힘들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어머니, 시설입소를 통해 단체생활을 하다보면 부족한 아이의 사회성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결정했다는 부모… 여건이 안 되는 현실 속에서 가족해체를 막기 위한 나름의 해법을 자녀의 시설입소에서 찾았다는 이들의 답변에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은 들었으나, 현실을 알기에 어떤 조언도 할 수 없었다. 





발달장애인 기본권 보장을 위한 발달장애인법


그렇다면 이 기막힌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부모회,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등 주요 발달장애인부모 연합단체가 모처럼 한 테이블에 모였고, 발달장애인법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해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발달장애인법의 핵심은 '선별적', '시혜적' 장애아동 복지지원 체계에서 보편 서비스로의 개편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보육지원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기초생활수급 가정이나 차상위 계층, 최중증의 장애가 있는 가족에게만 제공돼 대부분의 일반 가정에서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으나, 법률이 통과되고 나면 소득보장은 물론 의료서부터 치료서비스, 보장구 및 보조공학기기, 가족지원 등을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국가는 발달장애인특별기금을 조성하는 한편, 각 시·군·구에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운영토록 규정했다. 이 센터에서는 발달장애인서비스 및 급여대상자를 판정하고 개인별 서비스 지원계획을 수립한다. 이때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위해 발달장애인당사자가 서비스 제공을 위한 구매계약을 맺도록 했으며, 지역사회와 통합된 서비스 및 급여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법안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발달장애인의 소득보장을 위해 최저임금액을 기준으로 발달장애인의 표준소득보장금액을 책정하고 개인 소득수준 등을 고려해 매월 지급하도록 했다. 즉 발달장애인당사자에게 월 95만 원가량의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법안이 상정되자 여기저기서 고개부터 내젓는 분위기다. 막대한 소요 예산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정부는 매년 발달장애인을 위해 2조5천억 원 가량의 예산을 책정해야하나 2012년 현재 장애인복지 예산이 1조 원이 안 되는 상황서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한발 뺀 입장이어서, 지난 10월 8일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열린 국정감사에서 임채민 장관은 "발달장애인법의 취지는 공감하나, 발달장애인 대책도 세우고 있는 상황서 법을 따로 만드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밝혀 부정적인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대신 성년후견제와 발달장애아동 조기발견 및 조기개입 체계 등을 담은 '발달장애인 지원계획'을 수립,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제련) 등 발달장애계는 "인프라와 기본소득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발달장애인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물타기'용"이라며 전면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득보장 조항을 삭제하자는 주장도 들려온다. 법안 제정자체가 물 건너갈 수도 있으니, 우선은 법안을 만들어놓고 개정을 통해 점진 확대를 꾀하자는 것이다. ‘발달장애인법 무용론’도 들려온다. 이미 여러 제도가 갖춰져 있는 상황에서 역차별이나 다른 서비스에 제약을 줄 수 있는 등의 논란이 있는 법안을 만드는 것보다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 절망적인 순간을 수도 없이 마주했던 과거를 떠올려본다면 그리 타당한 주장은 아닌 듯하다. 

‘차, 포 때더라도’ 법안제정을 목표로 하는 요구도 수긍할 수 없다. 특수교사 임용문제 등 법으로 지켜야 할 것들도 제대로 안 지켜지고 있는 상황서 첫 단추조차 잘못 꿴다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특히 빈약한 장애인 복지 내에서 또 다시 힘의 논리가 앞세워진다면…. 불편하고 험하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모습을 갖춘 법안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차라리 소득보장 기준을 최저임금에서 최저생계 수준으로 낮추는 등 액수를 줄이는 방안은 타협해볼만 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지난 19일 발제련과 발달장애인 지원관련 매니페스토 정책협약식을 갖고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약속한데 이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역시 지난 23일 발달장애인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키겠다고 밝혀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이진섭씨의 글로써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발달장애를 자녀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인생에 큰 폭탄을 맞은 것과 같다. 장애가족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 그것은 전쟁터. 우리나라 인구 중 3~4명 중 한명은 그들과 직간접 연관성이 있을 만큼 큰 사회문제이지만 복지는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나 울어야 열매가 열릴까??? 그 열매를 위해서는 균도와 세상걷기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다. 발달장애인법 제정, 기초법 상 부양의무제 폐지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열매다."


서울시복지재단 웹진 '천만다행' 12월호에 게재한 글 입니다.  

장애인복지

장애인식, 배려아닌 권리로 바라봐야

“나는 일생동안 아프리카인의 투쟁에 헌신해왔다.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고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나는 모든 사람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이상을 간직해왔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목표로 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소망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소망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 넬슨 만델라



장애인복지관 건립을 반대하는 아파트 주민회의 공고문

도봉구의 '명품 아파트'를 표방한다는 한 아파트 주민회에서 '지역에 장애인복지관 건립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트위터 등을 통해 알려지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입주자 대표 명의의 이 공고문에 따르면 ▲집값 하락 ▲차량통행 복잡 ▲장애인 출입으로 인한 사고위험 증가 ▲보통사람이 사는 이곳에 (장애인이)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게 이유다.

 

그들이 말한 '보통사람'은 도대체 누굴 지칭하는 걸까,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84세대의 가족 중에도 뇌졸중 등으로 인해 장애를 입은 이가 한명도 없지 않을 테고, 가족이나 친척 중에 지적장애 등 정신적 장애가 있는 이들이 없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보통의 상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서울시 25개 구 중 장애인복지관조차 없는 구가 도봉구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창피해야 할 텐데 말이다. 굳이 인권이나 법률을 들먹이기 않더라도 이런 시선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칠지, 무서울 따름이다.

 

카르텔을 형성하기 좋은 '집값 하락'을 무기로 내세운 것도 치졸하다.

그동안 일부 장애인복지관이 지역주민과 교감을 나누고 사랑방 역할을 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하기보다 다른데 치중했던 결과가 이런 문제를 야기했다는 데 대해 사회복지계 내부의 반성도 필요한 대목이지만, 과연 장애인복지관이 들어섰다고 집값이 하락했다는 근거 없는 괴담의 출처는 어디인지 궁금하다.


강원도 양양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일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강원도 양양군 하조대 해수욕장에 '하조대 희망들'이라는 장애인 숙박시설을 건립하려고 하자 양양군과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건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양양군청은 ‘하조대 희망들’이 장애인숙박시설이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이라고 주장해 건축협의를 취소했으나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허나 양양군청 측은 이에 불복, 항소하며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지속돼 내년 2월까지 건립추진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비 22억 원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한다. 사실상 건립이 불가능하게 된다. 결국 장애계단체는 지난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양양 군수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해 인권위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역 상인들의 입장에서야 ‘돈 없는 장애인’들이 와봐야 지역경제에 도움이 안될 테니 손해일 수 있겠다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꿔 장애인, 노인들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한 휴양지’라는 이미지를 홍보수단으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외국의 유명 해수욕장에는 지체장애가 있는 이들도 손쉽게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변용 휠체어 등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비치해놓는 등 장애인, 비장애인, 노인과 어린이 등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허나 이런 고민조차 없이 일부 상인들의 목소리가 전체인양 지자체가 나서서 대변하는 현재의 상황은 납득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뜨겁지만 양양군수는 요지부동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앞장서야 할 자치단체장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셈이다. 이보다 더 큰 상처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지역공동체는 회복하기 어려운 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 이제는 깨져야

 

연달아 터진 이 두 사건을 지켜보며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다. 장애인 시설 건립에 대한 반대 이면에는 고질적인 장애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들이 직접 나서 지역의 현안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허나 ‘집 값 하락’ 등 불확실한 자본논리를 근거로 내세워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목소리만 관철하려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가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의구심이 든다.

 

전 세계 몇 안 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에서 이런 장애인 차별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잘못 빚어낸 ‘장애인 상(象)’에 대한 오해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장애가 있는 사람의 상태를 일컫지만,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집단화해서 생각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무리’라는 희한한 꼬리표를 붙인다. 여기에, 나와 동급이 될 수도 있다는 듯, ‘극복’이라는 표현으로 미화하고, 때에 따라서는 동정심을 촉발한다. 이렇다보니 언론매체나 사회복지기관의 ‘장애인을 배려하자’는 구호가 ‘선긋기’로 잘못 받아들여져 시혜적인 인식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 돼버렸다.

 

물론 동정과 배려하는 마음이 항상 나쁜 뜻일 수는 없겠으나, ‘도와줄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지만, 내 상황이 안 좋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심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배려, 즉 형편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장애인 vs 일반인(비장애인)’의 이분적인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이 같은 시선은 장애인생활시설 등에 자원봉사를 다녀온 이들이 남긴 수기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불쌍한 사람’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불안한 마음’으로 출발해 ‘천사같이 맑고 순수한 영혼’을 거쳐 ‘오히려 내가 용기를 얻고 왔다’로 마무리 되곤 하지만, ‘왜 저들은 저런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가’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극히 적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라. ‘불쌍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보니, 나는 그리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들을 도울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뜻이 뭘 의미하겠는지를.

 

이렇다보니 ‘그들은’ 나와는 떨어져서 다른 공간에 사는 사람들로 의식하게 되고, 내 공간에 침범하는 것을 불쾌한 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닐까. 전국의 모든 해수욕장이 보행약자도 출입이 편하고 손쉽게 묶을 수 있도록 설계됐더라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복지관이었더라면…. 짚어봐야 할 숙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은 법으로 정해놨기 때문에 지켜져야 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살아가는 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할 원칙이다. 불쌍하면 떡 하나 주고, 내가 어려우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 원칙이 잘 지켜지도록 홍보하고, 독려하는 일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몫이다.

 

이제는 배려가 아니라 권리다. 참다운 민주주의 국가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서울시복지재단 웹진 천만다행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장애인복지

발달장애인 지원 제도, 부모를 위한? 당사자를 위한?

며칠 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본 드라마에서는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가 등장했다.

잠시 스치듯 봐 정확한 줄거리는 모르겠으나, 생활하고 있던 보육원에서 몰래 나와 사람들의 혼을 빼놓은 모양이다. 이를 보며 문득 ‘그 아이의 공동생활은 어땠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아이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기억할까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보육원이 있듯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장애인생활시설이란 곳이 있다. 이 공간이 어느 순간서부터 발달장애인들로 메워지고 있다. 심지어 노숙인 생활시설까지. 생활시설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이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남들이 해주는 것 받아먹으면서 생활하는 게 얼마나 좋은가.”라는 말이 얼마나 인간답지 않은 삶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언사인지 경험해 본 당사자들은 안다. 자신의 생활 전체를 통제받으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의 욕구와는 무관하게. 이는 그 시설이 얼마나 쾌적하고, 종사자들의 서비스 수준이 높은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장애유형 전반에 걸쳐 탈 시설이 이뤄지고 있는 현 시점서 유독 발달장애인, 즉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장애인생활시설 입소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점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진작부터 ‘탈 시설’이 대세임을, 이미 패러다임이 전환됐다고 수차례 강조해왔으나 발달장애인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일까, 사실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다 “힘들더라도 내가 배고플 때 라면 끓여먹을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란 가슴 먹먹한 증언조차 듣기 어려워지는 때가 오면 어쩌나 겁이 덜컥 난다. 과연 기우일까.

 

며칠 전 정부는 발달장애인 권리보호 체계구축과 돌봄지원 강화, 지역사회 내 자립기반 구축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발달장애인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발달장애인당사자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우선 발달장애인 권리보호 체계 구축을 위한 성견후견제를 조기정착하고, 실종예방 및 인신매매 등 근절을 위한 정기 수색 및 점검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완 대체 의사소통기구 등을 보급하는 한편 발달장애인 지원센터를 운영해 재활치료, 성인기 전환을 위한 계획 수립 등과 함께 가족상담, 인식개선 활동 등을 추진해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랭해 보인다.

우리 아이가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책을 바랐건만 온도차가 컸기 때문일 듯싶다. 물론 발달장애인 부모에 대한 전문 심리상담 지원, 지역사회 거주모델 개발, 보완대체 의사소통기구 개발 등 새로운 지원사업은 의미 있어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동안 추진해왔던 서비스들을 일부 확대하거나 강화하는 수준인데다,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장애아동지원센터와 통합시키는 것은 오히려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왜곡하거나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부모들은 이야기한다. 지능검사 몇 점 차이 난다는 이유로 등급을 나눠 서비스를 지원하는 지금의 방식이 어떻게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인지를, ‘우리 아이가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까’를 놓고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있건만, 부양의 책임은 여전히 가족에게 던져놓고 부모를 위한 심리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변죽 때리기 정책’이라고. 한 가지 더, 지금까지의 과정서 가장 중요한 발달장애인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봤는가다.

 

지난 18일 열린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을 위한 의견수렴의 장’을 지켜본 장애계 활동가의 말이 참으로 쓰다.

 

'열심히 메모하던 (발달장애인) 당사자 한분이 나오면서 그러더군요 토론회에 나온 사람이 우리를 바보 취급해서 기분이 상한다고. 우리가 그렇게 엄마를 괴롭히고 있었냐고…제가 대신 사과했습니다. 당신을 모욕해서 미안하다고.'

 

'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을 참여시키는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소용없었다는 역사를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설마 당사자분들이 무슨 이해능력이 있어서…라고 하지는 않으실 테죠? 발달장애인 당사자분들과 소통 못하는 무능력은 그렇다 쳐 능력주의를 따른다고 해도 최소한 발달장애인 분들 중에 상위 1%를 찾는 노력이라도, 쇼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들이 ‘우리도 발달장애인 당사자’ 라고 주장하시면서 ‘국가에게 발달장애인을 책임져라’ 라는 이 모순적인 어법을 아이큐 78인 명문대 어느 지체장애인 졸업생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발달장애인 지원 제도.

누구를 위함인지, 더 멀리가기 전에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파라다이스 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아이소리 http://isori.net 에 기고한 글입니다)

장애인복지

'도가니' 공지영 작가를 조사하겠다고?


신문을 보니 한나라당 '인권위원'이라는 분들이 광주까지 내려가 내놓은 대책이 “'도가니' 소설은 과장됐다.”며 공지영 작가를 조사하라고 요구했고, 경찰은 이에 화답했단다.

이때다 싶었는지, 도가니 파장이 한풀 꺾였다고 생각했는지 한국사회복지법인협의회는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정체성 유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운동 반대를 공식 천명했고, 오늘(28일) 범사회복지 전진대회를 개최한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2006년 그때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며칠 전 장애계의 한 유명 교수에게 “도가니는 사실과 다르다. 에바다 학교도 공익이사들과 전교조가 휘저으면서 문제가 더욱 커졌다.  인화학교 前 교장을 문제 삼는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전국적으로 진행 중인 장애인인권침해 조사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1대1 전수조사가 원칙인데 100여명이 넘는 시설을 조사경험이 전무한 사람들 4명이 가서 하루 동안 조사하겠다는 발상자체가 면죄부를 씌워주기 위한 방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조사원을 무시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절대 시간으로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군대서 소원수리 받는 것도 아니고, 라포를 형성한 후 면접을 진행해도 조사가 될지 말지 의문인 상황서 가장 어려운 면접조사 중 하나인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조사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진행하려는지, 시설 측에다 조사 일정 다 통보해주고 어떤 대답을 받으려는지, 황당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인천지역 장애인생활시설 조사 때도, 이정선 의원과 시설인권연대 등을 주축으로 한 미신고생활시설 조사 때도 문제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적은 인원이 전국을 돌아다녀야했고, 지자체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의 비협조(더 나아가 시설장 편들기) 등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도가니’ 문제도 그렇고,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문제도 그렇고, 장애인생활시설 조사에도 장애인당사자는 도대체 찾아볼 수가 없다.
서럽다.

장애인복지

제주 계신 분, 국토 대순례 나서는 '근육병' 부자에게 희망주세요

제주에서 생활하시는 분들께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다름이 아니라 근육병을 앓고있는 재국 군과 아버님은 근육병 환우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 국토 대순례를 진행해왔습니다.

작년까지는 스폰서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었는데, 올해는 이마저도 여의치않은 모양인가봐요.

많은 것을 부탁하시지는 않네요.  
재국 군 아버님이 갖고 내려오실 차량(스타랙스)을 운전하면서 뒤따라 와주실 수 있는 분과 저렴하면서도 깨끗한 민박집을 알고 계신 분 있으시면 아래 재국 군 아버님께 직접 연락을 해주셔도 좋고, 댓글로 남겨 주시면 아버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참, 함께 걷는 것도 이들께 큰 힘이 될겁니다 ^^) 

이들 부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세요

※ 재국 군과 아버님의 국토 대순례를 소개한 기사입니다.
한겨레 신문
제주일보


〝 희망 2011〞 제 4차 재국이의 희망의 국토행진


내용

주제 : 근육병 친구들아 희망을 갖자. 용기를 내자. 포기하지말자.

주최 : 희망돌이 재국

날짜 : 2011년 8월9일(화) ~ 8월17일(수) 8박9일. ※날씨로 인해 예비 날짜 +2일(19일까지)

장소 :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 (280km)

성산 일출봉 ~ 김녕 ~ 용두암 ~ 곽지해변 ~ 협제 ~ 모슬포 ~ 사계해변 ~ 안덕 ~ 논짓물 ~ 주상절리 ~ 강정마을 ~ 서귀포 ~ 표선해변 ~ 섭지코지 ~ 성산 일출봉

방법 : 재국이는 전동휠체어로 행진. 아빠는 도보. (하루 평균 30~32km)

재국이의 마음 - 근육병으로 투병중인 재국이가 네 번째 희망의 국토행진을 출발 하게 되었습니다.

재국이가 국토종단과 행진을 포기하지 않고 하는 것은 같은 병으로 투병중인 친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근육병을 치료 할 수 있는 신약이 나올 그날까지. 또 치료 방법이 생길 그때까지. 희망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자는 재국이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재국이는 언제나 항상 웃는 얼굴로. 밝은 마음으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어 합니다.

재국이의 희망의 국토종단 길.

1 차 : 2007년 6월13일 ~ 7월4일(24일간) 부산역 광장 ~ 서울시청 광장 까지. 600km. (한국 메이크어위시 후원)

2 차 : 2009년 4월13일 ~ 5월3일(20일간) 해남땅끝마을 ~ 임진각 까지. 670km. (한국 메이크어위시 후원)

3 차 : 2010년 9월 6일 ~ 9월11일(6일간) 대전옥계초등학교 ~ 포항 호미곶 까지. 273km. (후원 없이 단독으로)

4 차 : 2011년 8월 9일 ~ 8월17일(9일간) 제주 해안도로 일주. 280km. (예정)

5 차 : 2012년 3월23일 ~ 90일간. 미국 대륙횡단 도전 (계획중)

서부 산타모니카 ~ 동부 워싱톤 까지. 4.800km.

연락처 : 재국 아빠 : H.P. 공일공 육삼사육 삼사공육 (042) 285-3406. E-mail ~ hoonb7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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