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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촌놈 제주살이/초보농부이야기

제주 감귤 밭에서 일하다 말고 더덕캐러간 사연

제주 내려온 지 얼마 안됐을 때 감귤농사를 많이 짓는 서귀포 지역을 여행 다니다 대낮부터 막걸리 한잔에 얼굴 불콰해진 어르신들을 보며 혀를 찬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제주 남성은 한량이고, 여성들이 부지런해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는 속설을 믿던 터라 낮서부터 막걸리에 취해있는 모습이 그렇게 한심해보일 수가 없었다.

그게 오해였다는 것을 밭에서 일 하게 되며 알게 됐고, 정말 창피했고 죄송스러웠다.

 

햇볕이 내리쬐는 낮 시간에 밭에서 일하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밭에 나와 일하다가 내가 그들을 목격한 점심나절엔 이미 하루에 해야 할 일 대부분을 마무리하고 쉬는 중이었건만 나는 한 단면만 보고 오해를 해버린거지.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나이지만 밭에 가야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해서든 일찍 나가보려고 한다. 낮에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겪어봤기에.

 

무수천 지류. 군데 군데 물이 고여있는 곳이 있다. 신비감 짱!!!




이날도 밭을 빌려준 태권 형님이랑 열심히(?) 창고도 짓고 덩굴도 끊어주고 일을 하다가 한낮이 되니 일하기가 실퍼졌다.

둘다 쉬면서 페이스북을 보고 있는데 친구 하나는 더덕밭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더덕이나 캐러 가기로 결심!

 

때맞춰 와준 와이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무수천 줄기를 따라 올라가서는 하천 안에 들어가 더덕찾기 삼매경’, 내 눈엔 더덕인지 풀인지 구분도 안가고, 향이 난다고는 하는데 이게 무슨 향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형님은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하천 건너편에서 '매의 눈'으로 더덕을 포착, 캐고있는 태권 형님 모습





꿩 독새기(알). 보통 꿩은 사람 인기척이 나면 바로 도망가는데 바로 옆에 올때까지 숨어있다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알을 품고 있었나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제주의 하천은 기본적으로 건천이다. 평상시에는 말라있다 비가 오면 물이 차는 형태인데, 이곳 하천 바닥에 풀들이 별로 없는 것을 보니 물흐름이 잘 이뤄지고 있는가보다





하천 속에서 만난 산수국


 

아쉽게도 바위 틈 사이에 숨어있어 많은 양은 못캐고, 저녁 식사 겸 음주때 영양식으로 먹는걸로~

 

오늘도 신기한 경험 하나 추가했다.

나 더덕캐는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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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잘보고가용

서울촌놈 제주살이/초보농부이야기

제초제 안뿌린 제주 감귤 밭은 검질과의 전쟁 중

많은 비가 예보됐던 지난 주말, 비가 올 듯 말 듯 하면서 햇빛 쨍쨍한 날을 맞아 아침 일찍부터 예초를 시작했습니다.

 

예초기라는 기계를 처음 본게 군대였듯 해요. 저처럼 실력도, 힘도 없는 땅개들은 이빨이 닳아 없어진 낫 하나 들고 산언저리를 낑낑거리며 깎고 있노라면, 시골출신 고참들이 예초기를 메고 시원스럽게 풀을 깎아 내리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허나 칼날이 튀고, 예초기 반대편에 서있다 봉변당하는 모습들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엄청 공포스러운 물건으로 각인됐죠.

 

제주에 와 밭에서 일을 하려고 보니 예초기 사용은 트럭 운전과 더불어 필수 중 하나더군요.

저 무서운걸 내가 어떻게 쓰나겁내며 사용한지도 벌써 2년 여. 능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초기 들고 깎는 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시원스레 풀이 깎여진 귤밭 모습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감귤밭은 장마철이 되면 귤밭인지 풀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속도로 풀이 자라나요

전업 농부가 아닌지라 오른쪽 먼저 깎고 다음날 왼쪽을 깎으려고 보면 오른쪽도 비슷한 속도로 자라나는걸 보며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한 달 여 전에 감귤나무를 타고 다니는 덩굴들을 다 제거했건만 예초하면서 보니 엄청나게 자랐더군요

주말에만 일을 하려고 보니 시간이 부족해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일을 해야겠다 싶습니다.

 

다음 주면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짓다 만 창고도 마저 지어야 하고, 창궐할 벌레를 잡기 위해 벌레약도 살포해야 하고 할 건 많은데 체력이 안 따라 주고... .

 

쑥쑥 자라나는 감귤



콩알만했던 감귤이 이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청귤을 팔아볼까 생각 중인데 어떨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힘들이고 관심 가져주는 것만큼 잘 자라는 게 농사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농사이니 장담이나 과신없이 부지런한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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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지네요 화이팅입니다

서울촌놈 제주살이/초보농부이야기

제주 감귤농사의 천적, 응애와 깍지벌래 때문에 기계유제를 뿌리다


5월 7일. 오늘은 감귤나무에 기계유제라는 약을 뿌렸다. 

일반적인 감귤 밭에 가보면 나무 밑엔 잡초하나 없이 맨들맨들 하고 나무엔 벌레들이 없다.  

상(上)품의 과일을 만들기 위해 농부들은 많은 노력들을 하는데 그중 농약치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한달에 한번꼴로 농약을 쳐 과수에 붙은 각종 벌레들을 잡고, 바닥의 잡풀들이 감귤나무로 가는 영양분을 빼앗아 먹는다는 이유로 제초제를 뿌리는데 우리 밭은 유기농까진 아니지만 최소한의 약만 치는 저농약 농법을 고집하고 있다. 


유기농이나 저농약 감귤 대부분은 귤 표면에 거뭇거뭇한 게 붙어 있거나 하얗게 변하면서 딱딱해진 과육들을 볼 수 있는데 요게 깍지벌레와 응애벌래 때문이라고. 

왁스까지 칠한 예쁜(?)과육만을 좋아하는 소비자들 눈에는 못 먹는 과육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떨어져 문제이기도 하지만 나무를 말라죽게 하기 때문에 5월이면 감귤밭에 기계유지를 뿌린다고. 


이 기계유제는 일종의 기름덩어리다. 이걸 감귤나무에 뿌려주면 기름성분이 해충의 몸에 도포돼 숨을 못 쉬어 죽게 만든 약이라고. 


기계유제를 이렇게 담아주시고




커다란 말통에 물농도에 맞게 넣어준 후 기계로 계속 휘저어주면 분무작업 준비완료!



일단 말통에 물을 받고 약을 넣은 후 모터로 휘젓기를 시작하면서 일 시작! 

2천500평 되는 밭에 약을 치려고 보니 말통 3통이 들어간다. 둘이서 아침 7시반부터 시작해 마무리 하니 오후 3시가 다됐다. 

나야 줄만 잡고 있었으니 힘든거 모르고 있었지만 나무마다 꼼꼼하게 약을 친 태권형님의 팔뚝은 이미 남의 팔뚝 -_-;; 


늦은 점심을 먹고 장모님, 와이프와 함께 밭 한켠에 오일장에서 사온 묘종을 심었다. 

장모님 왈 울 사위 소꼽장난 한단다. 수박과 참외, 고추, 토마토 등을 심었는데 얼마나 잘 자랄건지.

밥 먹은지 얼마 안돼 숨쉬기도 힘든데 백만년만에 곡괭이질을 하려니 무지 힘들었는데 사람들은 그 모습이 웃긴가보다. 


예쁘게 자라고 있는 감귤꽃. 아카시아향처럼 진하고 깊다. 정말 매력적인 향기





새끼 감귤. 저 열매가 자라 맛있는 감귤로 성장한다고



혼자서 밭일을 시작해 보겠다고 하니 제주 내려간다 이야기했을때와 같은 반응이다. 

처음엔 '우와' 하더니 나중엔 '네가 그걸 할수 있겠어', '그 힘든걸 뭣하러 하냐'는 이야기. 

그러게. 밭은 커녕 흙길 걸어본지도 아득한 내가, 초딩들도 아는 나무나 풀 이름도 모르는 내가 이 일을 왜 하겠다고 덤볐을까. 

나도 의아하지만 기분은 좋다. 


황금연휴도 이렇게 간다. 

그래도 숨쉬며 사는 것 같아 행복하다. 

약으로도 치료 안된다는 근막통증을 제외한다면. 

서울촌놈 제주살이/초보농부이야기

내 감귤밭이 생겼다


흙을 만지게 될줄 정말 몰랐다. 

어릴적을 제외하고는 아파트에 둘러싸인 곳에서 살았고, 촌이라고 내려가봤자 아무도 농사짓는 분이 없었기에 농촌과 흙이 있는 삶이란 티브이 속 이야기일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무식하고 관심없었냐면 군대 대기병 시절, 우리가 지켜야 할 초소들 위치와 짱박아 놓은 물건이 어딨는지를 배우며 보름정도 왕고참과 산 속을 누볐는데 자두가 나무에서 열리는 것도 처음 알았고, 뽕나무 열매가 그리 맛있는지도 그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네온사인이 없으면 허전함을 느끼던 내가, 도심 속 한복판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곳을 떠나고 싶다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 속에서의 삶과 나와의 이질감' 때문이었던 듯 하다. 


우여곡절 끝에 제주에 내려왔고, 제주출신이라는 와이프 덕에 남들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정착했지만 처음 내려왔을때 생각했던 삶과 현실이 일치할리 없고, 그냥 흘러가는 시간들을 거스를만한 능력도 재력도 없는지라 답답할 무렵 흙은 묘한 위안을 주었다. 


남들따라 밭에 몇번, 수확 몇번 해본게 다였지만 횟수가 늘어나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나도 농사 한번 지어볼까?"란 생각이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물론 농사를 업으로 해 식구들 건사하며 먹고 살려면 적지 않은 규모로 해야 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자신이 없기에 전업할 용기는 없지만 그래도 '내 밭'이 갖고 싶었다. 아니 내 공간에서 내가 노력한 만큼 내가 수확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시작할 수 있을까, 조만간 쫓겨날 전셋집 구할 일도 막막한 상황서 감귤밭을 사서 해보는건 불가능한 일. 그렇다고 직장이 있는 상황서 덜컥 귤밭을 임대해 농사지을 능력도, 자신도 없어서 고민하던 중 우연찮은 기회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귤농사를 짓는 형님에게서 작은 평수나마 감귤농사를 지어볼 땅을 빌렸다. 


감귤밭 모습





잘 자거라 감귤나무야





올 겨울을 위해 창고도 수리 중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고, '여기서 부터 여기까지가 네 것'이라는 표식도 없지만 그래도 1년간 내 땅이 생겼다. 아니 내 귤밭이 생겼다! 

마흔 넘어서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자 마음먹었던 일이 이제 막 시작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흔쾌히 밭을 빌려주신 태권 형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서울촌놈 제주살이/아이 맛나 제주음식

제주에도 고속도로 휴게소? 서부관광마트 오뎅한번 먹어봐

서울살이 40여 년 살면서 마트 찾을 일이 없었는데, 지금의 제주 집으로 이사오고 보니 집 근처에 가게가 없어서 완전 불편 -_-;;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 (빠른 걸음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이 서부관광마트와 10여 분 걸어가야 있는 광령마트가 전부였으나 3년 새 집 앞에 편의점도 생기고 많은 변화를 겪는 중이다. 


각설하고, 이 서부관광마트는 평화로, 그러니까 서귀포 넘어가는 도로의 길목에 있는 마트다. 

육지부로 보면 고속도로 휴게소라고 해야할까? 새벽이면 서귀포로 넘어가 일을 해야 하는 아저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저녁무렵이면 숙소로 들어가는 (중국인)관광객들로 바글 바글하다. (평화로쪽에 서부관광마트가 있다면 동쪽 봉개마트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이 마트의 '킬러 콘텐츠'는 오뎅과 김밥이다. 

새벽서부터 바글 바글, 멸치육수에 오뎅을 넣어서 끓여 놓으면 알아서 꺼내 먹고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오뎅이 완전 맛있는 것도 아니고, 김밥이 독특하게 맛난 것도 아니지만 이게 중독성이 있다. 

덜 익은거 좋아하면 아래, 푹 익은걸 좋아하면 위에꺼 골라먹으면 된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아랫쪽 지금의 마트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짓고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처음 오픈했을땐 예전 편의점만 바글 바글, 마트엔 사람이 없어 '장사 잘되는 곳 이사가면 망한다'는 속설을 깨지 못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편의점도, 마트도 다 장사 잘된다. 




요즘에도 그런가?

예전엔 호주머니는 비어 있고, 술은 먹고 싶을때 포장마차에서 오뎅 한접시랑 소주한잔 퍼 마시고 그랬는데 같은 생각 갖고 계신 분이 많은지 오뎅 안주삼아 질펀하게 소주 드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갑다. 


여기서는 소주 마시는건 금지, 오뎅이랑 김밥, 삶은 계란, 샌드위치만 드시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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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와요

서울촌놈 제주살이/아이 좋아 제주 여행

4.3평화여행 위한 답사준비

4.3평화여행 서쪽코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한 사건"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무등이왓 

4.3때만 하더라도 130가구가 모여살던 곳 

아이가 춤추는 모습과 닮은 지영이라고 해서 무동동(舞童洞)이라 했다고. 

1862년 임술민란(강제검의 난), 1898년 방성칠의 난을 겪은 곳. 

300여년 전 설촌된 마을로 주로 화전일구며 살아와. 


4.3 1년 전인 1947년 여름 공출문제에서 시작. 미군정은 수확량 기준으로 식량을 털어가던 일제때보다 더하게 경작면적을 기준으로 획일적 수납조치. 

(이른바 성출반대사건) 1947년 8월 8일 보리수매 독려차 들른 군청 직원 4~5명 주민의견 무시하고 오만하게 굴다 청년들에게 집단구타-> 연행. 강경탄압은 오히려 입산자만 낳아 이후 동광리는 미군정이 주목하는 마을이 돼 수시로 경찰이  들락달락. 


1948년 11월 15일 섬에 소개령이 내려졌으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상황서 지역 마을유지 10명 이유없이 학살. 여러차례 토벌대 마을로 올라오고 그때마다 이리 저리 피해다니기 일쑤, 해안마을로 내려간다 해도 산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 '이미 도피자 가족' 낙인.


1948년 12월 12일 잠복한 토벌대가 시신 수습 위해 마을 돌아온 사람을 붙잡아 산채로 화장. 그 뒤로 시신 수습자 없었고, 그 시신을 굶주린 돼지가 뜯어먹고, 그 돼지를 토벌대가 먹고... 


4.3 전 과정서 무등이왓 희생자 최소 100명 이상. 


제주4.3사건실무위원회, 2001년 3월 29~4월 3일까지 무등이왓 등 6군데 1차로 표석 설치 

"여기는 4.3사건의 와중인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되어 잃어버린 남제주군 안덕면 무등이왓 터이다. (중략) 4.3으로 무등이왓에서 약 100명, 삼밭구석에서 약 50명, 조수궤에서 6명이 희생됐다" (가해주체 진압군)


헛묘 

4.3 희생자 중 온전히 시신을 수습한 경우가 적기 때문에 유족들은 망자가 생전에 입은 옷가지 등을 묻은 헛묘를 만들어. 


희생자 많이 낸 무등이왓 임씨 일가도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1년 뒤 칠성판을 만들어 들고 정방폭포 위를 찾아가. 하지만 조그만 구덩이에 뼈들만 엉켜있어 구분이 불가. 


돌아온 그들은 심방 불러 굿을 하고 희생자 입은 옷가지로 원혼을 불러 마을 근처에 무덤 만들어 놓아-> 동광 육거리 헛묘 


9명의 헛묘(2기는 합묘) 조성한 유족 임문숙 "혼이라도 불러와야 했어. 마을 잃고 사람 잃었지만, 그들이 쉴 곳을 만드는 것은 산 사람들의 몫. 섭섭해 만들었지만 허망한 일"


큰넓궤

궤: 작은 자연동굴을 의미하는 제주말.


동광목장 안에 있는 용암동굴. 1948년 11월 중순 이후 토벌대 초토화작전 시행되며 은신처를 찾아 헤메이다 12월 경 큰넓궤로 숨어들어. 당시 주민들은 주로 도너리오름 곶자왈에서 숨어지내. 그러다 주민들은 큰넓궤를 발견하고 폭설이 쏟아지자 이 굴로 들어가. 당시 어른아이들이나 노인은 이 굴속에서 살아. 청년들은 주변 야산이나 근처 작은 굴에 숨어 토벌대의 습격에 대비해 망을 보거나 물과 식량을 나르는 일을 해. 

궤에 들어가는 입구는 상당히 좁음. 한사람 겨우 들어갈 길을 10미터 들어가면 2~3미터 높이의 절벽. 절벽을 내려가면 작은 광장이 있고 앞쪽으로 동굴이 수십미터 이어짐. 

이곳에서 60여 일 피난. 120여명 숨어있었으나 보초 서던 사람이 잡히며 들통. 


토벌대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어 입구를 돌로 봉쇄하고 철수했으나 도너리 오름서 망보던 이들이 치우고 피신. 한라산 쪽으로 피신했으나 내리는 눈때문에 발자국이 남아 발각. 


1949년 1월 결국 대부분 체포. 한림 토벌대에게 잡혀간 일부는 까마귀빌레에서, 대정 토벌대에 잡혀간 일부는 모슬봉 동쪽 편에서, 안덕 토벌대에게 체포된 일부는 정방폭포서 사망. 


정방폭포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28미터에 달하는 물줄기를 지닌 정방폭포는 서귀포 일대의 최대 학살터. 폭포 물줄기가 떨어지는 기암절벽과 부근 소남머리가 그 현장. 


제주도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1948년 11월 24일 이래 최소 6차례 이상 대학살 자행. 살인 경험 없는 사병들의 실습용으로 양민 이용하기도. 


1949년 1월 22일 무등이왓 사람들이 처형. 한꺼번에 86명 죽었는데 이중 20여 명이 무등이왓 사람들. 


가시리 밭에 가면 찾아가 볼 곳 = 가시리 새가름 마을터 

표선국민학교 수용된 이주민 17명이 속칭 버들못 근처에서 목숨 잃는등 25명 희생. 1949년 2월부터 가시리가 현재의 리사무소를 중심으로 재건되면서 2가호가 새가름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외로움에 못이겨 또다시 떠나가버려 끝내 옛 마을을 이루지 못했다. 


참고자료: 제주역사기행 (이영권),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유적2 (제주4.3연구소), 4.3유적지 길라잡이 (제주4.3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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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보고갑니다

서울촌놈 제주살이/아이 좋아 제주 여행

생태여행 하기 좋은 곳, 제주시 저지리

오름과 곶자왈, 올레길과 문화가 공존하는 마을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하루 코스로 즐기기 정말 좋은 마을. 

내 일터인 제주생태관광과 함께 생태관광 마을만들기에도 열심인 곳. 



콩 익어가는 풍경


저지 곶자왈


저지 곶자왈


저지 곶자왈


저지 곶자왈


오설록


저지리


저지에서 바라본 한라산


저지 올레


저지 올레


문도지오름 가는 길


문도지오름


문도지오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저지 딸기




저지오름


저지오름에서 내려본 풍경


저지오름에서 맞이한 낙조


저지오름


서울촌놈 제주살이/아이 좋아 제주 여행

문도지오름

가을, 문도지오름 풍경






서울촌놈 제주살이/아이 좋아 제주 여행

[발편한 여행] 장마철 제주, 사려니숲길이 제격

요맘때의 제주는 우기입니다. 

이번에는 태풍 너구리까지 와주시는 덕분에 다른때보다 장마가 길게만 느껴지네요. 


사려니숲길 입구에 마련된 화장실. 예전엔 굉장히 지저분한 화장실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정비됐네요. 휠체어를 탄 분도 접근가능토록 해놨어요




입구까지 야자매트가 만들어져 휠체어 접근이 가능합니다




사려니숲길은 생물권보전지역이예요. 들어가시는 입구에 마련된 설명서를 읽고 들어가시면 숲에 대한 매력이 배가될듯





그래도 여행은 왔고, 비와 어울리는 여행지가 어딜까 여쭤보는 분 많으신데, 전 사려니숲길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사려니가 무슨 뜻을까 찾아봤더니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살' 또는 '솔'은 신성한 곳 또는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신역(神域)의 산명에 쓰이는 말이라고 하네요.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랍니다. 


사려니숲길은 사려니 오름이 접해있어 이름이 됐고, 사려니 오름은 '긴 줄을 동그랗게 사려논 모습'과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란 설이 있다고 제주생태관광협회 고제량 대표님이 추가해주셨어요 고맙습니다 ^^



이곳은 해발 500~600미터의 고지대에 있어서 우선 시원합니다.  또 오래된 삼나무 숲의 울창함과 운치가 주는 재미가 남다른 곳이죠. 














숲에서 만난 새끼노루




산딸나무의 꽃잎이 마치 하얀나비가 나뭇잎 위에 앉아있는듯 하지 않나요?






탐방 가능한 사려니숲길은 비자림로의 봉개동 구간에서 조천읍 교래리의 물찻오름을 지나 구좌읍 덕천리의 붉은오름까지로 총 10.5km달합니다. 4곳의 지점마다 테마가 있어서 숲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다, 길이 평탄해 휠체어를 타고 오시는 분들도 봉개 초입부터 붉은오름 끝 지점까지 편안하게 숲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화려한 보라빛의 산수국도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도채비고장이라고 불리는 산수국의 압권은 나무그늘로 어두침침할때 아지랭이처럼 파란불빛이 흩날리는 모습입니다. 정말로 도깨비 불빛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이걸 재밌다고 해야 하나, 서글픈 일이라고 해야하나, 산수국의 꽃은 굉장히 작아요. 그러다보니 수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가짜꽃을 만들어 곤충들을 유혹합니다. 곤충들은 이 헛꽃에 속아 산수국을 찾았다가 꽃가루를 묻혀 운반하게 되죠. 신비한건 수정이 된 꽃은 헛꽃잎을 뒤집어 더이상 곤충이 찾아오지 않도록 한다는군요. 잘 확인해보세요. 


예전 사약으로 쓰였다는 천남성도 찾아볼 수 있어요. 과거에는 이 뿌리를 사약의 재료로 썼다고 하고요, 하얀 나비가 나뭇잎에 내려앉은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크는 산딸나무도 지천을 이룹니다. 


천남성




고사리과 식물들




햇빛을 받기위해 가늘고 길게 뻗은 자태에서 생명력을 느끼게 되네요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월든 삼거리에 다다릅니다. 

하늘높이 솟은 삼나무 숲에서 산림욕을 하다보면 몸이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을 경험하실 수 있답니다. 











이쪽 끝서부터 저쪽 끝까지 3시간, 장마철에는 안갯속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사려니숲길을 걸으며 힐링하세요. 




서울촌놈 제주살이/아이 좋아 제주 여행

제주 한림 월령리, 쪽빛 바다 속으로~

제주공항서 서쪽 바닷길을 따라가다보면 협재와 금능해변을 만나는데,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월령리를 찾을 수 있어요. 


올레 14코스에 위치한 월령리는 울창한 나무숲과 현무암이 널려있는 예쁜 마을입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건 손바닥 선인장이라는 선인장 군락입니다. 


천연기념물 제 429호로 지정된 이곳은 오래전 선인장 씨앗이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멕시코에서 넘어와 월령리에 군락을 이룬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선인장을 마을주민들이 쥐나 뱀을 퇴치하기 위해 돌담 주위에 심으면서 월령리 전체에 퍼졌다고 합니다. 이 선인장의 열매가 바로 백련초랍니다. 















협재나 금릉의 그것처럼 이곳 바닷빛도 참 아름다워요. 

다만 협재나 금릉처럼 왁자지끌한 느낌없고 고즈넉한 것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 한담의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고 할까? 조용히 바다 구경하면서 산책하기 좋네요. 


나무데크가 잘 놓여져 있어서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편안하게 월령리 바다를 감상하실 수 있어요. 











이곳에 가시면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할머니의 생가도 찾아가볼 수 있답니다. 


4.3의 아픔과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진아영 할머니는 4.3 발발 다음해인 1949년 1월 한경면 판포리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턱을 잃었습니다. 이후 할머니는 평생을 무명천으로 턱을 감추고 다니셨으며, 지난 2004년 쓸쓸히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월령리 마을에 있는 생가는 2009년 월령리 마을주민과 뜻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무명천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구성해 지금까지 생가보존 및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하니 이곳을 찾으면 한번씩 들러 4.3의 아픔을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접근성: 나무데크가 있어서 접근 가능

편의시설: 공중화장실이 있으나 장애인화장실은 없음. 턱이 있어서 이용에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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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 월령선인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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