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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놀이

오뎅 한 꼬치


땅거미가 내려앉을 시각, 남성들 여럿이 오뎅꼬치 앞에 얽기 섥기 모였다. 


고된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 한시간 여 남짓 길 떠나기 전 허기를 때우는 이들도 있을테고, 마땅히 챙겨줄 사람 없으니 대충 저녁 한끼 때우려고 찾아온 이도 있을게다. 


하루종일 눌러붙은 눈물 한웅큼, 불어터진 오뎅 한 꼬치, 조미료 맛 물씬나는 김밥 한줄을 목구멍에 밀어넣고서야 방긋 웃는다. 


오뎅 한 꼬치에 오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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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요즘 오뎅바는 보기 힘들어졌어요...ㅜㅜ

사회복지

종사자 부담만 가득...사회복지기관 바자회, 이젠 개선해야 한다


바자회, 일일호프 시즌이 다가오면 일정액의 돈을 모아놔요. 다른 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네 바자회 티켓은 제가 사주고 그 친구들은 제 티켓을 사주고. 일종의 품앗이인거죠.”

 

10행사의 계절은 지나갔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연말에 몰려있는 바자회나 일일호프 준비로 분주해지기 때문이다.

 

각 부서별로 후원물품을 챙겨야 하고, 어떤 기관에서는 직원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떡볶이나 어묵처럼 현장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음식도 있지만 미리 재료를 준비해 만들어 놓고 조리해야 하는 음식들도 직원들의 몫이다. 이 때문에 몇날 며칠 새벽출근에 한밤중 퇴근도 마다할 수 없다.

근무시간에 하는 공적 업무다 보니 열외란 있을 수 없다. 고유업무 처리에 바쁘더라도 함께 해야 한다. 일종의 실적능력평가이기 때문이다.

 

물건 받으러 다니는 직원은 곤욕스럽다.

질 좋은 제품을 깔아(?)놔야 더 많은 손님이 몰리는 건 장사의 기본 중 기본. 하지만 그런 물건 받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몇 년 동안 관계를 잘 맺어놓은 덕을 보는 해도 있지만, 이보다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틀어지는데서 오는 어려움이 더 크다. 한꺼번에 많은 기관들이 비슷한 시기에 후원행사를 하다 보니 물량이 딸릴 수밖에 없다.

 

처음엔 질을 생각하지만 막판에 몰리면 일단 많이 확보하는 게 장땡이다.

수요자는 질 좋은 상품을 찾지만 공급자는 실적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후원금 영수증으로 재고처리에 이바지 했으니, 지역 시장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했다는 위로만 남을 때가 많다.

 

강매 수준의 티켓 할당제

 

가장 곤욕스러운 것은 티켓 판매.

팔아야 하는 사람 입장에선 한 장이라도 더 팔고 싶은 마음 누가 이해 못할까만 사는 사람 입장은 다르다. 부조라 생각해 한두 장 사주긴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몰려오는 티켓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나 먹거리나 살거리가 있으면 다행, 이마저도 없는 행사는.... 한숨만 나온다.

 

파는 사람 입장도 난감하다. 아쉬운 소리도 한 두 번이지, ‘덩어리로 판매할 능력이 없는 신입 직원들은 돌려막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웃픈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래도 기관이나 법인별 다른 날짜에 열리는 행사는 낫다. 같은 날, 같은 시간, 한 공간에서 열리는 바자회가 열리는 곳에서의 티켓판매는 그야말로 전투를 방불케 한다.

 

종사자 수가 많은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낫다. 개인에게 할당되는 양이 적기 때문이다. 대규모 인력이 근무하는 기관 종사자의 할당량이 10(1장 만원, 10만원 어치)이라면 적은 수가 근무하는 기관 종사자는 30~50장씩 할당받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다.

 

바자회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예산이 빠듯하다 보니 외부 후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바자회나 일일호프와 같이 목돈을 벌어들이는 행사가 있어야 운영상 숨통을 틔울 수 있다. 전 직원이 전사적으로 달려(?)들어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희생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개인이 감수해야 할 사안이고, 다 같이 동참하자는 취지에서 티켓을 할당하긴 하지만 못 팔아온다고 그만큼 채워 넣으라 강요하지 않는다 항변한다.

 

하지만 그건 관리자의 생각이고, 직원들 생각은 다르다.

 

티켓을 할당해준다는 것 자체가 무언의 압박이에요. 동료들과 비교당하고... 어떤 분은 처음부터 티켓판매 안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하지만 눈총 받거든요. 그렇게 눈총 받고 싶지도 않고, 비교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인지라 많이 팔아보려고 노력도 해봤죠. 하지만 아쉬운 소리하기 싫으니 전전긍긍 하고 있다 다른 기관 일일호프집에서 동기들과 만났는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한 친구가 팁을 가르쳐주더라고요. 자신도 선배한테 배웠다며 친구들 몇 명 모아 계처럼 돌아가며 티켓구입을 하라고요. 지금은 동기들과 그런 방식으로 할당받은 티켓을 소진하고 있어요.”

 

저는 그냥 제가 구입해요. 저를 보고 행사장에 놀러 온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인심도 써야 하니 10장 정도는 제가 구매해도 큰 부담도 없고, 관계를 위해선 그 정도 비용은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이상 할당 받는다면? 어떤 기관에선 100장씩 할당해주기도 한다는군요. 그럼 최소 50장은 팔아야 면피할 텐데... 저도 그 상황에 처한다면 다시 생각해봐야겠죠.”

 

이와 같은 직원들의 어려움을 공감한 모 사회복지기관은 매해 1천 여 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던 바자회와 일일호프를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기관의 관리자들은 거액의 수익금 욕심이 없는 성인군자일까. 여유자금이 넘쳐 굳이 할 필요성을 못 느껴 포기했을까.

 

선거철이 되다보니 사회복지 노동자 처우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자주 접한다.

구호처럼, 뜬구름 잡는 듯 한 처우개선 목소리만 높일게 아니라 실질적인 게 필요해 보인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후원행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일상다반사

제주 마을 공동체, 관광으로 살릴 수 없을까

여행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많이 오게 할까 늘 고민입니다. 

특히나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특성상 단체손님들이 중심인데 제주를 찾는 단체관광객의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도 되고요. 


저는 앞으로의 제주 여행은 '덕후'들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이 곽광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덕후라고 표현하니 좀 그래 보이는데, 특정분야에 대해 관심있는 이들, 예를들어 환경과 마을 살이에 관심 있는 이들은 생태관광을 찾을 것이고, 역사와 사회에 관심있는 분들은 4.3을 주제로 한 여행을 찾겠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오늘 제주환경운동연합 양수남 팀장께서 페북에 남긴 글을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야마나시현 키요사토 지역 마키바 공원. @양수남



최근 거대 자본에 의해 중산간 지역의 마을공동목장들이 외부자본에 의해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글을 남기셨는데, 일본 야마나시현 키요사토 지역의 목장공원을 예로 들으셨어요. 


동물과의 교감을 관광과 교육의 소재로 쓰고있는 것을 벤치마킹해 제주의 50여개 마을공동목장들을 매각하지말고 체험교육과 치유의 장으로 그리고 700여년 목축문화의 현장 역사교과서로 쓰면 어떨까 제안하신거죠. 


제 짧은 생각엔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고 디자인을 누가 하느냐 등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은 그리 녹록하진 않겠지만 충분히 대안이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다양성 있는 여행, 주민과 자연, 환경을 보전하는 여행 프로그램 많아졌으면 


영국을 가보지 않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영국 화이트채플을 중심으로 '잭 리퍼' 투어라는 게 있다더군요. 

아시다시피 잭 리퍼는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아직까지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범 이야기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치욕스럽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일텐데 이를 여행으로 만들어 날마다 진행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다는 것, 밤에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을 체험하기 위해 전세계인이 참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니메이션의 나라, 일본에는 이미 만화를 테마로 한 다양한 여행상품들이 있더라고요. 

언젠가 다큐로 본 '명탐정 코난' 투어도 인상깊었어요. 코난 박물관을 찾아 체험한 후 여러가지 미션을 수행하면서 지역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무척 기억에 남았어요. 아예 명탐정 코난과 함께하는 미스터리 투어라는 것도 있는가봐요. 


특정 지역을 '맛집' 하나로 각인 시켜버리는 '고독한 미식가'부터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동네를 둘러보는 여행 상품이 꽤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주도 이런 테마가 있는 여행을 만들어 내는데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싶어요. 

자연과 나, 도보여행이라는 테마로 이미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올레길 걷기도 큰 틀에서 보자면 자연속에서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분들이 열광하셨기에 성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원도심을 관통하는 4.3 다크투어도 좋은 상품거리죠. 이미 건축기행(안도 타다오 작품 등)이나 미술기행(변시지, 이중섭 화가 등)은 많이 진행하고 있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제주를 찾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있습니다. 또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탄소년단 뮤비에 등장한 환상숲 체험을 넣은 여행과 같이 아이돌 스타가 출연한 자연지역을 방문하는 여행 프로그램도 기획해볼 수 있겠네요. 

앞서 언급한 일본의 '고독한 미식가'와 같이 제주의 토속음식을 찾는 기행도 가능할테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생태관광도 빠질 수 없겠죠. 


사회복지 영역에서도 가능할듯 합니다. 

예전 제주사회복지협의회 김성건 국장께서 기관(또는 시설)과 여행지를 잇는 여행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은 적 있습니다. 프로그램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제주의 사회복지기관도 둘러보고 여행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겐 이런 프로그램도 매력적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기관방문이나 워크숍으로 제주를 찾는 곳들이 많기에 충분히 시장성도 있고요. 


종교 영역에선 이미 천주교, 불교와 관련한 걷기코스가 있지만, 이걸 조금 응용해 여행코스로 만들어 봐도 좋을듯 싶어요. 

(천주교의 흑역사라고 싫어라 할수도 있겠지만) 이재수의 난과 같이 초기 천주교 역사가 담긴 장소가 제주에 산재해 있는데 이 장소들을 엮고 그곳에 얽힌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교인으로서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해봤어요. 


이런 생각들이 여행 프로그램으로 개발되고, 상품화로까지 디자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주의 여행이 조금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 제가 미처 모르는 사이 이미 플랫폼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였을지도 모르겠군요. 


다양성이 있는 제주, 자연과 환경을 보전하는 여행, 주민들의 삶도 소중히 생각하는 여행 프로그램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활성화됐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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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보고갑니다 ^^

사회복지

질경이처럼 질긴 사사모


2014년 5월 11일. 


아침에 일어나 카톡에 올라온 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2년 전 5월, 고사리 판매홍보를 첫 글을 시작으로 페이스북 활동을 개시하며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제주 사회복지인들이 잘 하지 않는 매체로 소통한다는 게 바람직한 방법일까 고민도 했었다. 비공개로 운영 중이지만 5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룹 회원으로 가입돼 있고, 돈때문에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으면 싶어 '몸빵'을 자처했다. 

자구책으로 봄에는 고사리, 겨울엔 귤을 팔았는데 오히려 이게 사람들에게 어필된 듯 싶기도 하다. (가끔씩이긴 하지만) 사사모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도 있을만큼 성장도 했고, 말도 안되는 오해와 질시를 받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친목을 기반으로 한 모임치곤 많은 일을 해왔다. 

'무리에 끼지 못하면 듣고 싶은 교육조차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에 꼭 사회복지인이 아니더라도 들어두면 좋을 이야기들 중심으로 무료 강좌로 열기 시작했다.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박성현 사무국장을 모셔서 이야기 들었을때의 소름을 아직 잊을 수 없으며, 순전히 우리를 위해 엄청난 강좌를 해주신 김종해 교수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제주로 몰려오는 색다른 경험도 해봤고. 

개인적으론 사사모라는 이름을 달기 전, 두 명인가 세 명인가 모여 권태용 부장 초청해 '마을신문 만들기' 이야기를 들었을때 였다. 와서 들었으면 하는 사람도 안왔고, 너무 적은 사람이 모여 강사에게 참 민망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목적성있게 진행하면 가능하겠다 생각했었지. 


제주 사회복지계의 변화가 있으려면 제주사협회와 제주사회복지협의회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몇번의 행사를 공동 주관하기도 했고, 제주 사회복지계에선 처음으로 팟케스트를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참 단순하게 시작했고,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패거리 문화에 끼지 못하면 공부는 물론 네트워크 만들기도 어렵고, 그러니 자연스레 정보에서 뒤쳐지고, 그러다 보면 그 속에서 내 의지로 뭔가 해볼 수 있는건 별로 없다는 푸념과 한탄. 

술자리 주정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공부모임을 만들어 실천하자'며 출발한게 지금의 사사모다. 

시간쓰고 에너지 쓰건만 돈 한푼 벌기는 커녕 퍼주기만 하는 사람들 모습이 신기해 보였기도 했을테고 남의 손 벌리지 말자고 해 감귤밭 운영하는게 화제가 돼 더 많은 관심을 끈듯 하다. 




어떤 모임이든 개인들의 헌신에만 기대 유지하는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한 뜻이 이어졌고, 각자 (그때의 상황에선) 절박한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오랜 시간동안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본인에게 어떤 댓가가 돌아가는 게 없는 연하디 연한 친목모임에선 더. 


언제부터 우리 모임이 연해졌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아이러니 하게도 더 열심히 팟케스트 해보자는 뜻에서 팟케스트 장비를 구입하고 나서 아닌가 싶다. 

많은 이들이 마음과 돈을 모아줘 장비까지 구입했는데... 분기마다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기로 했고, 역할 분담도 해가며 같이하고 싶어 하는 분들을 더 많이 늘리고 소통하자고 했건만... 

누군가는 처음 시작했을때의 절실함이 사라졌기에 흐지부지하게 됐을수도 있고, 어떤 이는 지치기도, 누구는 실망감에, 또 누군가는 자신의 업무에 치이며 등한시됐을수도 있겠다. 1인 1표,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뭐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오히려 리더십의 발목을 잡은건 아닐지, 서로 지치고 날선 모습을 배려한다는 생각에 조금 천천히, 쉬었다 가자 하다 보니 지지부진, 이렇게까지 온건 아닐지. 


그래도 꽤 오래 잘 달려왔다고 자부한다. 

이 사람들 아니었으면 여기까지조차 올 수 없었다고 확신한다. 


앞으로의 사사모가 어떤 길을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태까지처럼 맨땅의 헤딩해가며 질경이처럼 어떤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비온 뒤에 더 단단해진다고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본연의 모습, 뜻으로 더욱 다가서지 않을까 싶다. 


사비를 털어서 사회사업의 가치를 실천하자, 기관에서 하지 못하는 일이나 할 수 없는 일을 의지와 뜻 맞는 이들과 함께 밖에서 해보자, 배워서 남 주자는 그 뜻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할 수 있지만, 혹시나 직장에서 피해입을까 모임을 만들어 놓고 모임이라 말 못하던 모진 상황에서도 함께 해 여기까지 온 몸빵 사사모들, 음으로 양으로 함께 해주며 힘써준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 시간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들이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의무감에선 벗어나되 지속적으로 꾸준함을 지켰으면 좋겠는데 이마저도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처음 모일때 우리가 그랬던 것 처럼. 


앞으로의 사사모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기대된다. 

  1. 벅지 M/D Reply

    의무감에선 벗어나되 지속적으로 꾸준함을 지켰으면 좋겠는데 이마저도 자유로운 사사모.
    내가 알고 보아온 멤버들의 모임을 향한 깊은 믿음. 진호의 바램처럼 이루어지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사회복지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 선거, 본격 레이싱 시작되나

주변의 자전거 마니아 덕분에 '겁쟁이 페달'이라는 애니를 보고있다. 

애니 덕후인 고딩1학년 주인공이 우연찮은 기회에 천부적인 레이싱 재능을 발견하게 됐고, 이를 알아봐 준 선배, 친구들과 함께 대회우승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성장해간다는 내용이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대회 레이싱 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치밀한 사전 전략과 당일의 여건을 고려해 언제 치고 나갈 것인지 작전을 짜고, 작전이 시작돼면 극한의 한계에 이르더라도 목표를 위해 밟고 또 밟는다. 


올해 말, 내년에 있을 여럿 선거를 앞두고 이쪽 저쪽 캠프들이 가동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선거를 앞둔 한국사회복지사협회(이하 한사협)도 그간 심각한 내홍을 겪었기에 어느때 보다 차기 회장에 대한 관심과 염원이 높지만, 반면 아예 체념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어떤 분이 출마하시겠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특히 대통령 선거 등 굵직한 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에 대한 고려(?)까지 이어지며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좌천 타천, 하마평은 무성했으나 공식 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하신 분이 없었는데 이용교 前 광주사협 회장이 5일 스타트를 끊었다. 


이 前 회장님과의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기자 생활때부터 블로그 등에 올린 글을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고, 광주사협을 잡음없이 안정적인 구조로 이끌었다는 평은 익히들어 알고 있다. 지금도 페북과 블로그 등을 통해 열심히 소통해오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어서 좋은 후보자 한 분이 출마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겁쟁이 페달' 속 레이스를 빗대보자면 이 前 회장님이 골을 위해 가장 먼저 작전을 걸었다. 다소 빠르게 스타트(출마선언)를 끊었다는 건 타 예비후보다 다소 열세일 전국적 인지도를 끌어올리겠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한 명이 작전을 걸었으니 속속 다른 분들도 치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눈 높이에 맞춘 '출마자'는 누구?


이번 선거는 투표권이 있는 모든 회원들이 현장과 온라인을 통해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점 때문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대의원 투표야 평소의 성향을 확인해 니편 내편 가르고 득실을 계산해 지지층을 확보하면 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물론 지난 선거때도 문은 열렸지만 현장투표소를 찾아서 투표해야만 하는 한계성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이번에야 말로 명실상부, 자신이 속해있는 지역과 기관의 눈치볼 일 없이 소신껏 투표를 할 수 있게된 것이다. 


문제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투표라는 점이다. 

협회에 대해 관심 없는 대다수, 등을 돌린 유권자, 출마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한계가 있어 알 수 없는 구조들... 이걸 뛰어넘지 않으면 자칫 '인기투표'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그동안의 문제로 지적된 지역색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드러날 우려도 있다.    


어떤 상품을 팔때 고객의 입장을 들여다 보라고 한다. 

판매자 입장에선 엄청 좋은 가치와 의미를 담았을지 모르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욕구와 맞지 않아 시장에서 사장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판매자의 제품을 팔 수 있을 시장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이뤄진 후 (판매자의 기대치엔 다소 못 미칠지 모르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욕구를 반영한 제품을 만들고, '이런 제품이 있다'고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사라지게 된다. 


이번 선거를 제품판매에 비유하자면, 출마자들은 자신을 어떻게 포장해 판매할까, 상당히 궁금하다.  

출마할 모든 후보께서 '한사협 위상강화'와 '회원들의 권익증진'에 대해 이야기하실 것은 당연지사, 결국 각론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테지만 '이 출마자만큼은 결이 다르다'고 할만한 변별력은 갖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 상황에서 유권자는 누구에게 표를 찍어야 할까. 


이번 선거는 그 어느때보다 무관심으로 일관할 회원들의 비율이 높아 이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왜 이렇게 관심없는 이들이 양산됐을까. 기존 협회에서조차 주요한 사안은 소수에게 전달해 결정하고, 단체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기관에 일괄 팩스 송신으로 역할은 끝, 홈페이지나 페북에는 결과 사진 올리는 수준 아녔는지는 따로 반성해 볼 일이다.) 


정리하자면, 어떻게 하면 숨어있는 소비자와 접점을 만들어 자신의 각론까지를 이야기해 설득하고, 호감을 사 지지를 유도하고 투표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이 관건이며, 이 과정에서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본다. 


각 협회장과 협회장 친한 몇명의 지역인사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전통적 방식의 마케팅만 고집해 돌파할지, 투표권을 갖고 있는 각각의 유권자와 어떻게 하면 접점을 만들어 출마자의 생각을 전할까에 대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마케팅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누가 더 대중의 소리에 민감한 참모진을 꾸릴지, 후보자가 얼마나 참모들의 직언에 귀 기울일지도 변수로 작용하겠다 싶다)



* 사족

개인적으론, 차기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여야 지금의 난국에 해법을 풀어낼 수 있다고 본다. 

모든 후보자마다 회원단체의 발전을 위해 유의미한 공약들을 내놓겠지만, 회장만 바뀐다면 그 공약 실천할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는 수많은 민간 자치단체장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봐왔다. 


보통의 의지와 돌파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언급과 소신을 밝힐 출마자도 있을까. 이것도 관심이다.  

책읽기놀이

날 때부터 서툴렀다, 딱 내 얘기잖아



'심야식당' 아베 야로의 신작 '날 때부터 서툴렀다' 


휴가때 샀으니 벌써 보름이 지났구나. 

함께 산 이토 준지의 '자선 걸작집'만 홀랑 보고 말았는데, 문득 눈에 들어와 넘겼는데 '우와' 탄성이 절로~ 

이건 딱 내 어렸을 때의 이야기잖아. 잊고있던 흑역사들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내 어릴적도 그랬다. 

병약(?)해 늘 감기를 달고 살았고, 병원가는 게 일이었는데 아베 야로의 어렸을 적도 다르지 않았나보다.  


운동을 하도 못해 체육하는 날이 그렇게 싫었던 것도, 운동회하는 날 비오기를 바랐던 것도 그렇고. 

철봉은 초딩 5학년때던가? 다리걸고 뱅글 뱅글 돌아야 하는데 나는 늘 밑으로 추락하기 일쑤였고, 그맘때 친구들은 철봉위로 올라서 빙글 돌아서 누가 더 멀리 뒤나를 하며 놀곤 했는데 나는 겁이 나 한번도 못해보고 구경만 했지. 


겁은 많은데 지는건 또 싫으니 잘 못하겠다 싶은건 아예 도전하지도 않는 성격도 그때 길들여졌구나. 



집 반경 200미터는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녔다는 아베 야로의 아버지 그림을 보더니만 와이프가 빵 터진다. 

배나온거 하며 딱 나라고.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먼길을 돌고 돌아 이 자리까지 왔구나. 

날 때부터 서툴렀으니깐. 


만화책이라기 보단 한편의 수필을 읽은듯한 느낌.


어떻게 성장했을까? 2편이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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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부터 서툴렀다, 딱 내 얘기잖아  (0) 2016.08.20
아이조아영화

싱 스트리트, 과거를 들킨듯 매력적인 영화

존 코너 감독의 신작 '싱 스트리트'의 한 장면. 존 카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실제 감독은 더 프레임즈라는 그룹에서 2년 여 간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고.



영화 '원스'나 '비긴 어게인'을 만든 감독 존 카니의 신작 '싱 스트리트'

전작들을 재밌게 봤기에 챙겨보려 했지만 못 보다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보게 됐다. 


1970년대 경제위기를 겪으며 1980년대에는 16~17%까지 인플레이션이 치솟아 수 만 명의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아빠의 실직으로 인해 더블린으로 이사갔지만, 전학간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는건 친구들의 괴롭힘, 여기에 모질게 대하는 신부 선생이 그의 학교생활을 힘들게 한다. 

설상가상, 엄마는 바람이 나 집을 나가겠다 선언을 하고, 살고 있는 집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아빠는 집마저 내놓고 각자 알아서 살라고 무책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무엇하나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15살 코너와 라피나의 인생.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그의 옆에 음악이 있어 슬픔 가득한 가운데서도 행복을 찾고, 희망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아하의 테이크 온 미를 비롯해 듀란듀란, 데이빗 보위의 음악이 귓가를 간질거리지 않았다면 찌질한 인생에 한숨만 푹푹 나왔을 이 영화에 흠뻑 빠졌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되는 일 하나 없는 아웃사이더 코너에서 우울했던 내 미성년 시절을 엿봤고, 나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척척 해낸 그에게서 대신 보상받은 듯한 느낌 때문 아닐까 싶었다.  


어떤 영화 리뷰를 보니 음악으로 아웃사이더를 구원했다는데, 글쎄. 

집어삼킬듯 한 파도를 뚫고 나가면서도 즐거워 하는 코너와 라피나의 모습을 보며 기억도 가물 가물한 영화 '투발루'의 한 장면을 떠올렸고, 그들이 겪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몰려와 가슴 답답했다면 너무 노땅 스러운건가?  


음악과 성장을 엮어놓은 영화 중 가장 재밌게 본 영화 '스쿨 오브 락'만큼이나 즐겁게 감상한 '싱 스트리트'

비행기 안에서의 영화는 더빙판이어서 2% 아쉬웠는데 자막판으로 다시 한번 감상해봐야겠다. 



'싱 스트리트' 예고편. 이것만 봐도 재미지다.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든 노래와 장면.




장애인복지

장애인 시설투쟁의 시작, s재단과의 싸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해오는 단체인데 (나이를 떠나) 존경하는 활동가들 가득하다.  


발바닥이 활동한지가 벌써 10년. 이를 맞아 발바닥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오늘 메일링으로 받은 내용은 S재단과의 싸움. 나도 이때부터 시설민주화 기사를 쓰기 시작했기에 남다른 감정이 들어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메일로 온 내용을 복사해 이곳으로 옮겨 소개한다. 





비리와 인권침해로 얼룩진 S재단과의 첫 번째 싸움 : 

2003년-2004년 

       
           
   

 2003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내부고발을 시작하다. 


  우리가 미신고시설과 조건부로 등록한 시설의 인권문제로 몰입해 있을 때, S재단노조에서는 여러 차례 장애인단체나 인권단체를 방문하여 S재단의 비리와 인권침해를 알리고 도움을 호소했다. 노조원들이 말하는 인권침해 내용을 들어보면 여느 미신고시설의 인권문제와 비슷했지만, 그 규모면에서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1984년 정신요양원으로 시작한 S재단은 그 당시 산하 기관이 13개, 1000여명이 넘는 장애인이 살고 있었고 정신병원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국가로부터 받는 보조금도 년간 100억원이 넘었다. 비리와 인권침해를 제보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고 모인 직원의 수도 200여명이 넘었다. 미신고시설과의 싸움이 작은 국지전이라면 대형 사회복지법인인 S재단과의 싸움은 마치 세계대전 같았다. 

  S재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철원과 그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었다. 복지나 장애를 잘 알아서 취업 했다기보다는 철원지역에 이렇다 할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취업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기혼여성들이었는데 그저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자식 키워본 경험으로 장애인을 돌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 순박한 사람들을 투사로 만든 것은 노동착취와 인권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터진 이후였다. 

  S재단은 1997년 5월, 시설직원들에 의한 집단폭행으로 최ㅇㅇ이라는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이미 보도된 적이 있었다. 폭행·사망하였음에도 S재단에서는 사망진단서를 허위로 발급하여 자연사 한 것으로 감추려고 했고 이것까지 밝혀지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노조가 결성되기 전에도 양심적인 직원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상을 알리고자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누구누구는 감독기관인 종로구청에 민원을 넣기도 하고, 경찰서에 제보도 했지만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었다. 그 당시 공익제보라는 개념조차가 낯설던 시절이었다. 양심적인 사람들의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2002년 말 비밀리에 노조가입서가 직원들 사이에 돌았고, 2003년 2월 23일에는 직원 400여명 중 244명이 대거 노조에 가입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되었다.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글> 
  
(중략) 이곳은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곳으로 추위가 극심합니다. 그러함에도 에너지절약 한답시고, 하루에 한시간 정도 외에는 난방을 돌리지를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릇에 담아 놓은 물이 얼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장애인들 중에 동상이 안 걸린 이들이 없을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오거나, 외부에서 손님이 올 때면 난방시설을 작동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겨울에 난방시설이 얼어 터졌겠습니까?  

(중략) 대소변을 못 가린 이들이 있어 기저귀가 꼭 필요함에도 요양원측에서는 일절 제공이 없었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직원들이 개인 돈으로 산 기저귀마저 압수를 했습니다. 장애인들의 의식주는 이렇게 뒷전으로 밀린 채 더 심하게는 개인의 영리목적을 위해 직원들과 일부 지적장애인들을 이용해 요양원내에 소를 100여 마리나 키웠고, 장애인들을 돌봐야 할 시간에 직원들을 강제로 이사장 개인소유의 밭을 경작하게 했습니다.  

(중략) 저희들은 지난 세월동안 신체장애인들과 정신장애인들의 보금자리로서 공공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개인의 이윤추구의 공간으로 변해 버린 것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하면서 다시는 성람요양원이 원생들을 볼모로 몇몇 개인의 이윤추구의 장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이러한 잘못된 모습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낼 것입니다. 국민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2003년 3월 27일 
ㅁ,ㅇ 요양원 노동조합에서 드립니다. 
       
           
   
       
           
   

[사진설명 : S재단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노동권 문제를 넘어서, 복지시설안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인권침해와 비리의혹을 고발했다. 2004년 7월 23일 노동조합과 연대단체들은 검찰청 앞에서 S재단의 이사장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사장의 부인을 세탁원으로 이름을 올려 인건비를 1억4천만원을 횡령했고, 이에 대해 서울시는 환수조치만 하고 검찰고발은 하지 않았다. 이에 노동조합이 직접 고발하자, 검찰 또한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사진설명 : S재단의 인권침해와 노동력 착취, 비리의혹에도 불구하고 감독기관인 서울시와 종로구청, 감사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조합원들은 50여일간을 서울시-종로구청-감사원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호소했다. 이후 2년이 지난 후에야 이사장은 27억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되었다. 또한 시설직원의 성폭력 사건도 밝혀졌다. 노사갈등일 뿐이라며 외면했던 종로구청은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그제서야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162명의 소리 없는 죽음 

  직원들이 호소한 문제들은 이러했다. S재단의 시설들은 중증장애인이 살고 있는데도 겨울에는 난방을 가동하지 않아 너무 추워서 근무하기가 힘들었고, 봄가을에는 직원들이 장애인을 지원하는 본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장 개인 농장에서 일했다. 이사장은 직원들만 동원한 것이 아니라 노동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장애인들도 동원했고, 장애인의 하루 임금은 5천원 때론 1만원 때론 솔담배 반갑 이었다. 이사장이 직원을 농사일에 동원하는 동안 시설에 방치된 중증의 장애인들은 변기의 물을 마시거나, 내내 묶여있거나, 다치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는 장애인들이 많았는데 감독기관인 종로구청의 통계에 의하면 9년 동안(1995년부터 2003년까지) 162명이 사망했다. 1년에 18명씩 사망한 셈이다. 추운 겨울에도 하루 한 시간 정도만 난방 했기 때문에 온종일 바닥에 누워있어야 하는 와상장애인은 동상에 걸렸다. 어느 노조원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씻기는 자기 손도 이렇게 시린데 찬물로 씻는 장애인의 몸은 어떻겠느냐’며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느 노조원은 ‘우리들은 발 시리다고 실내화를 신고 다니는데 지적장애인들은 신겨놓은 양말도 다 벗어버려서, 자신은 출근하자마자 장애인의 바지와 양말을 꿰매놨다가 퇴근할 때 뜯어 놓고 간다’고 했다. 

  얼굴도 볼 수 없었던 조 이사장은 가끔 시설에 와서 사무실과 자기 농장의 소만 보고 갔고, 100마리 넘는 소의 먹이를 쌓아놓느라 직원들과 일부 장애인은 늦가을까지 총 동원됐다. 소 키우는 일에 동원된 장애인은 축사 옆 숙소에서 기거하면서 축사일과 불법 도축까지 해야 했다. 그곳에서 생활했던 고인이 된 故 지영씨의 인터뷰에서 그곳의 일상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밥오는 소리가 구르마 소리야, 병원 카터 처럼. 카터에서 식판에다 군부대 식판 같은거 거기다 밥이 딱 나오는데,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밥이 나왔어. 다 썩은 콩나물에, 하얀 콩나물은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콩나물 무침에. 기름은 둥둥둥둥 뜬 그 배춧국, 그런 국에 김치는 군내, 그때가 5월이었거든. 5월 초였는데 그때까지도 김장김치를 주는데 그것도 아주 잘잘하게 다진 김장김치였는데 군내가 났어. 그걸 먹으라고 주는 거야. 그것을......” 

- 2007년 고(故) 지영씨의 인터뷰 중에서 - 
       
           
   

[사진설명 : 2014년 고인이 된 지영씨는 S재단이 운영하는 중증장애인요양원에서 7년동안 생활하다가 자립했다. 그녀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밥을 주는 것에 항의하기 위하여, 거주인들을 조직하여 요양원으로 자장면을 배달시켰다. 배달된 자장면이 들어오려면 정문을 통과해야 했었는데, 그녀는 사무실에 가서 '우리가 자장면을 시켜먹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며 항의하여 간신히 배달원이 정문을 통과할수 있었다. 그들에게 도착한 자장면은 '허락'을 받느라 불어터져 있었지만 그녀는 시간이 꽤 지난 후에도 이 에피소드를 재밌게 이야기 하곤 했다. ]
       
           
   
       
           
   

[사진설명 : 직원들이 이사장 개인의 농장일에 동원되는 동안 발달장애인 50여명당 4명의 직원이 배치되었다. 한 층에 4명씩 남겨진 직원들은 장애인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이유로 손목을 뒤로 묶어 두었고, 묶인 손목을 잡아당겨 끈이 조여져서 장애인이 다치기도 했다.]   
       
           
   

[사진설명 : S재단이 운영하는 S정신요양원의 거주인들. 2006년 현애자국회의원실과 S정신요양원에 들어가려 하자, 입구를 막고 인권단체사람들은 들어올수 없다고 했다. 정문의 창살안으로 보이는 요양원의 운동장에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느린 걸음으로 돌고 있었다. 이들이 표정과 걸음걸이에는 사람의 생기라고는 찾아볼수 없었다. 이들의 남루한 옷차림과 까칠한 피부에서 이들이 어떤 처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선수투입, 군출신이 복지시설을 장악하다. 

  244명의 내부고발자가 생기자, S재단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S재단은 조직을 주도하던 직원들 18명을 부당해고 했고, 20여명을 부당 징계했다. 부당해고 당했던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이 걸려 승소했지만 복직 후 다시 부당해고 당했고, 부당 징계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S재단은 노조와의 협상과 요구에 성실히 임하는가 싶더니, 이어 군 출신의 시설장과 관리자들을 채용하여 노조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월간 <함께걸음> 기자가 S재단 산하 ㅁ장애인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만난 재단 측 관계자는 “노조문제 해결 하려고 군 출신 불러들인 것이다. 사회복지나 하는 유약한 원장이 노조원들을 당해 낼 수 있겠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함께걸음 2007.1.9.일 기사참조) 

  그러나 S재단은 노조가 제기하는 문제를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이사장 개인 농사일을 하지 않았다. 근무시간에 장애인을 지원하는 본래의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되자 S재단은 키우던 소 100마리를 팔아버렸다. 장애인에 대한 열악한 처우들은 국가보조금이 적다는 이유로 S재단이 빨리 개선하지 않았지만 노조의 존재 자체는 S재단의 무소불위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S재단은 조합원들을 개인적으로 협박하여 조합을 탈퇴시키고, 노조에 대한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었다. 관리자들은 야간근무 중에 조합원들의 사물함을 뒤지는가 하면, 꼬투리를 잡아 조합원들에게 시말서를 강요했다. S재단에서는 노동조합이 소속된 ‘금속노조 경기북부지회’를 문제 삼아 ‘장애인이 금속이냐, 왜 사회복지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했냐, 금속노조가 조합비를 챙기려고 수를 쓴 것이다’고 떠들기도 했다. 당시 S재단 노조는 지역 내 공공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공공노조와 상의하여 지역지회가 있었던 금속노조에 가입한 상황이었다. S재단에서는 노동조합의 그 무엇도 꼬투리 삼고 싶었으리라. 

무엇이든 노사갈등으로 몰아가는 감독기관 종로구청과 서울시 

그런데 정작 문제는 관리감독을 해야 할 종로구청과 서울시, 복지부의 태도였다. 노조에서 호소하는 문제들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S재단의 모든 문제를 노사문제로 귀결시켰다. 노조에서 국고보조금을 어떻게 횡령하고 있는지, 인권침해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제보해도 모든 것을 노사갈등으로 몰아갔다. S재단이 운영하던 송추정신병원이 과징금을 물게 된 데 대해 당시 현애자국회의원실에서 질의하자 복지부 담당자는 “아마 몇 천 만원의 과징금을 물게 될 것이다. 그 이상 더 많이 물려서 송추병원 문 닫으면 그 환자들은 어쩌란 말이냐”라고 대답했다. 그 시설과 정신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수용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괴기한 인식이 담당 공무원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입술을 꼭 깨물며 참아 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열심히 싸워서 저 추운 요양원 안에 있는 원우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사람답게 살수 있다면,  그리고 그토록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고 사측의 노예처럼 일만해야 했던 그 암울하던 시절을 위하여서라도 여기 모인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쌍한 원우들을 무기삼아 이제껏 삶을 영위하고 있는 저 악독한 이사장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것을 꼭 볼 것 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이 고통을 참고 또 참아서라도 끝까지 싸워서 우리 장애원우들의 인권도, 우리 짖밟힌 노동자들의 인권도 반듯이 찾을 것입니다. " 

- 당시 지역 주민들에게 호소하는 조합원 J씨의 글 중에서 - 
       
           
   
       
           
   
2004년, 질긴 놈이 되자. 

  노동조합의 호소만으로 정부와 사회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노동조합에서는 2003년 말, 철원과 송추 등 경기 북부지역의 단체들과 <비리재단, S재단 퇴진과 민주재단 건설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시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나갔다. 그러나 조 이사장은 지역 안에서 유력 인사였다. S재단 사무처장은 “철원지역에서 철원군을 제외하고는 제일 큰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경찰서장과 군청과장, 경찰서 정보과장 등이 인사청탁을 해온다”(함께걸음 2004.8.1. 기사중 S재단 심ㅇㅇ사무처장 인터뷰)고 말할 정도였다. 사태를 해결하려면 지역을 벗어나야 했다. 더욱이 시설은 철원과 송추에 있었지만 감독기관은 서울시와 종로구청이었다. 노조에서는 서울에서 이 문제를 이슈로 만들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조합원들은 간간히 서울에 와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급기야는 ‘도보순례’라는 이름으로 매일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서울시청-S재단-종로구청-감사원을 돌면서 문제를 호소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에서 고발하는 건건마다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고, 감사청구를 해도 감사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노조에서는 계속해서 연대할 단체들을 찾아다녔다. 노동조합의 끈질긴 노력으로 다시 한번 전국단체로 다시 연대조직을 결성했다. 2004년 <장애인인권회복·S비리재단 퇴진과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였다. 그러나 다시 구성된 연대조직에 참여한 단체는 경기북부지역의 단체를 제외하고는 에바다학교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전부였다. 2004년 당시에는 사회복지법인의 비리와 인권침해에 맞설 단체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소수의 단체가 모였지만, S재단의 총체적인 비리와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계속 열었다. ‘질긴 놈이 승리 한다’는 명제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요양원 자식들은 소만도 못한가요? 

2003.3.27
박정혁 
(전 ㅇ요양원에서 거주인) 

이사장 아버지가 서울서 오신데요.  
요양원원장님의 구수한 방송 멘트.  
"각층 보모 선생님들은 
서울서 이사장님 일행이 오신 다니까  
원생들 복장 단정히 해주시고  
각 구역 청소 깨끗이 해주세요!"  

이사장 아버지가 우릴 보러 오신데요.  
엄마들은 바쁘게 가운을 걸쳐입고 엄마들은 맡은 아이 하나하나살펴요.  
새옷 한벌 못 구해 입힌것도 자신들의 죄인양  
옷장을 모두 열고 
가장 좋은 옷을 골라도 
누군가가 입다 가져온 헌옷들만 나와요.  
엄마들은 더 바쁘게 
맡은 구역 열심히~열심히  
쓸고 닦고 그것도 모자라  
뒷산 우사 가는 길에는 
먼지 하나 없도록 쓸고 또 쓸고  

이사장 아버지가 서울서 오셨데요.  
요양원 원장님의 또다른 방송멘트.  
"각층 보모 선생님들은 
이사장님 일행이 곧 착하시니까  
당번만 남으시고 
모두 현관으로 내려오세요!"  

이사장 아버지가 우릴 보러 오셨데요.  
엄마들은 아이들 밥 먹여 주다 말고,  
엄마들은 바삐~바삐 청계단을 내려가요.  
가슴엔 불평불만 가득가득 품고서  
초조한 걸음으로 바쁘게 현관으로  
각방에 남겨진 밥숟갈들의 원성이 
엄마들의 귓가에 메아리쳐 울리네요.  

이사장 아버지가 서울서 오셨데요.  
검은 승용차에서 무거운 몸 내리셨는데  
검은 우산 쓰시고서 눈길 한번 안주네요.  
성큼성큼 엄마들을 외면하시고  
요양원의 자식들은 거들떠도 안보시고 
이사장 아버지는 소만보고 가셨데요.  
       
           
   
[사진설명 : 위로부터 1~5번 사진. 1번은 장애인들이 동원되어 불법도축하던 장면. 2번은 요양원과 주변 이사장의 땅에 건축, 청소, 수리 등에 동원됐던 사진. 3번은 이사장의 농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 4번은 직원들이 농사일에 동원되는 동안 방치된 장애인이 넘어져 머리를 꿰맨 모습. 이후에도 같은 사고가 여러차례 발생. 5번은 거주인의 양말.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애인의 양말이 다 헤져서 뒤꿈치가 나와 있는걸 볼수 있다. 
       
           


사회복지

제주 사회복지인과 책 나눔 진행하다

얼마전 사회복지 관련 책 나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이렇습니다.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이명묵 관장님이 대표로 계신 세밧사(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촛불집회에 우리 사사모(사회사업의가치를실천하는사람들의모임) 고한철 형님이 참가하게 됐는데, 뒷풀이 자리에서 서울에서 진행한 '사회복지 도서 나눔 행사'를 제주에서도 열어보는 것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 진행하게 된거죠. 


인간과복지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 200여 권은 물론 대표님께서 직접 내려오셔서 책 나눔 진행 및 강의까지 자비량으로 해주신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사사모는 초기 멤버이자 사비를 털고, 몸빵을 자처한 7명의 만장일치에 의해 진행하는데요, 워낙 좋은 일인지라 큰 반대없이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답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알리고 참여를 유도하느냐였습니다. 

사사모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기는 하나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홍보하고 있기에 페이스북을 활용하지 않는 분들에게까지 알리는건 많은 어려움이 따를듯 싶었습니다. 

물론 사사모 식구들과 관계돼있는 지인들만 불러모아 행사를 진행해도 보내주신 책들은 어떻게 소화가 가능하겠지만 '사회복지사들이 양질의 책을 읽음으로써 의식을 향상시키고, 세상에 기여하길 바란다'는 행사 취지에는 맞지 않을 듯 해 고민을 하다 예전처럼 제주 사회복지계를 대표하는 제주사회복지사협회와 제주사회복지협의회와 공동으로 진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부 의견을 모으게 됐습니다. 


책 나눔 행사를 공동 주관한 제주사회복지사협회, 제주사회복지협의회 직원분들과 사사모와 함께 기념사진



사실 두 단체가 워낙 큰 일을 많이 하는데다, 업무 진행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세 단체가 함께 뭔가 도모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미 일전의 행사를 치르며 쉽지 않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바 있었기에 주저함도 있었지만 '함께하는 정신'을 만들어 가는 길에 사사모가 작은 다리 역할이 된다면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싶어 과감히 함께하기를 청했습니다. 


혹시나 난색을 표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주 흔쾌히 동의해주셔서 순조로운 출발! 

간단한 기획안을 짜고 단위별 업무분장을 하고, 드디어 7월 9일 행사시작! 장마로 인한 폭우가 예보돼 있었지만 무사히 내려오시고,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강의 듣고 책 갖고 가셔서 잘 치렀답니다. 


사회복지 책 나눔 행사 웹자보. 구글 설문지를 활용해 신청자를 접수받은 덕에 팩스 보내고 받은걸 취합해 정리하는 번거로움을 해결했다


http://goo.gl/forms/TOy7u8n0dYeXRbtE3


일을 하다보면 함께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업으로 하는 일이니 성과도 내야 할거고, 다른데 투여해야 할 에너지를 조정하고 컨폼받고 진행하는 게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기도 하고, 힘도 많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만남을 통해 서로의 조직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고, 번거로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그 긍정의 에너지들은 사협회와 협의회를 찾는 회원들이게 돌아가고, 그들이 뭔가 새로운 것들을 도모해보는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지 않을까, 작은 바람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론 조금 더 한발 다가선 느낌이라고 할까요. 


사협회에서 회비를 낸 회원 모두에게 문자로 행사를 소개해주셨고, 협의회에서 무료로 강당을 빌려주시고 세팅을 도와주셨습니다. 

특히 사협회에서 과일간식을 준비해주셨는데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과일을 자르고 컵에 넣은 성의가 대단 대단, 오신 분들 전부 감동했죠. 


한시간 반 넘도록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글쓰기' 강의해주신 세밧사 이명묵 대표님께도 고맙고, 제주에서 책 나눔 행사를 진행한다고 하니 흔쾌히 책을 내어주신 광주대학교 이용교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돈 버는 일도, 명예로운 일도 아니고, 번거로움과 수고로움 가득 한 일에 늘 불평없이 함께 해주는 사사모 분들, 특히 고한철, 강영진, 오동철, 오창성, 정부옥, 조용재 몸빵님들 늘 감사합니다.  


아래는 이날 진행한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글쓰기' 영상입니다. 



  



서울촌놈 제주살이/초보농부이야기

제주 감귤 밭에서 일하다 말고 더덕캐러간 사연

제주 내려온 지 얼마 안됐을 때 감귤농사를 많이 짓는 서귀포 지역을 여행 다니다 대낮부터 막걸리 한잔에 얼굴 불콰해진 어르신들을 보며 혀를 찬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제주 남성은 한량이고, 여성들이 부지런해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는 속설을 믿던 터라 낮서부터 막걸리에 취해있는 모습이 그렇게 한심해보일 수가 없었다.

그게 오해였다는 것을 밭에서 일 하게 되며 알게 됐고, 정말 창피했고 죄송스러웠다.

 

햇볕이 내리쬐는 낮 시간에 밭에서 일하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밭에 나와 일하다가 내가 그들을 목격한 점심나절엔 이미 하루에 해야 할 일 대부분을 마무리하고 쉬는 중이었건만 나는 한 단면만 보고 오해를 해버린거지.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나이지만 밭에 가야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해서든 일찍 나가보려고 한다. 낮에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겪어봤기에.

 

무수천 지류. 군데 군데 물이 고여있는 곳이 있다. 신비감 짱!!!




이날도 밭을 빌려준 태권 형님이랑 열심히(?) 창고도 짓고 덩굴도 끊어주고 일을 하다가 한낮이 되니 일하기가 실퍼졌다.

둘다 쉬면서 페이스북을 보고 있는데 친구 하나는 더덕밭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더덕이나 캐러 가기로 결심!

 

때맞춰 와준 와이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무수천 줄기를 따라 올라가서는 하천 안에 들어가 더덕찾기 삼매경’, 내 눈엔 더덕인지 풀인지 구분도 안가고, 향이 난다고는 하는데 이게 무슨 향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형님은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하천 건너편에서 '매의 눈'으로 더덕을 포착, 캐고있는 태권 형님 모습





꿩 독새기(알). 보통 꿩은 사람 인기척이 나면 바로 도망가는데 바로 옆에 올때까지 숨어있다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알을 품고 있었나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제주의 하천은 기본적으로 건천이다. 평상시에는 말라있다 비가 오면 물이 차는 형태인데, 이곳 하천 바닥에 풀들이 별로 없는 것을 보니 물흐름이 잘 이뤄지고 있는가보다





하천 속에서 만난 산수국


 

아쉽게도 바위 틈 사이에 숨어있어 많은 양은 못캐고, 저녁 식사 겸 음주때 영양식으로 먹는걸로~

 

오늘도 신기한 경험 하나 추가했다.

나 더덕캐는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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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잘보고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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