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촌놈 제주살이

4.3 소재로 한 '지슬'이 '빨갱이' 영화라고?

제주에 내려와 살기로 결심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제주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처럼 많은 이들이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답고 행복하고, 꿈같은 낭만의 섬(?) 제주에서 살기를 원해 내려오지만, 이곳도 사람사는 동네인지라 '육지인에 대한 차별'이니 '문화환경에 대한 차이' 등을 운운하며 제주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제주에 내려왔으면 제주와 제주 원주민의 삶과 정서에 대해 이해하고 이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데, 이전의 생활패턴을 고집하다보니 삐그덕 거리는 것 아닌가 전 생각합니다. 이런게 싫어 아예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사는 '이주민'도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EBS<지식e채널>EBS<지식e채널>


그렇다면 제주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4.3입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3만여 명, 그러니까 제주사람 9명 중 1명은 학살당했다는 처참한 현대사를 외면한 채 제주를 이해할 수가 없죠. 속칭 '육짓것'이라 불리며 타지에서 온 이들을 터부시하고 배척하는 문화가 여전히 잔존하는데, 4.3항쟁이 이를 더 공고히했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있게 들립니다. 


참 아이러니 한 점은 4.3이 5.16보다 훨씬 오래전에 빚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조명은 한참 못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서점에 가보면 4.3과 관련한 많은 서적이 있으나 몇몇을 제외하고는 영 별로입니다. 관점이 빠진 채 역사서를 만들었다는 게 참 희한한 일입니다. 좀 괜찮다는 책들은 이미 절판돼 찾아보기 힘들고, 제주 역사와 관련한 책들을 모아놨다는 한라도서관이나 알음알음 통해서나 구해볼 수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다보니 제주민의 역사의식에 대해 비판하는 분도 계시는데, 잘은 모르지만, 연좌제를 비롯해 상상하기 힘든 고통과 핍박을 받았기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까지도 입을 열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4.3발발 30년이 지난 1978년에서야 소설의 형태로 4.3의 아픔을 기록한 작품 '순이삼촌'이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저자 현기영 선생님은 이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고 하더군요) 또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1988년에 들어서야 제주4.3연구소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불과 10년 전인 2003년에서야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국가권력에 의한 잘못에 대해 사과를 했을 정도니 4.3을 경험한 어르신들과 이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들의 머릿속에는 '어디가서 입도 벙긋하면 안되는' 트라우마가 여전히 크게 작용하는 것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그들이 '폭도'였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는 게 아니라, 상상하기 힘든 고통의 기억이 여전하기에 입을 닫고 있건만, 어떤 무리들은 4.3항쟁을 가르켜 '빨갱이 폭도들의 무장봉기'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나중에 따로 4.3에 대해 이야기 해볼 생각이지만, 이런 어이없는 주장의 배경은 잘못된 역사공부에서 비롯한 것 아닌가 합니다. 


지난 2012년 제주 MBC와 제주4.3연구소, 제주고고학연구소는 다랑쉬 굴 발견 20년을 맞아 최근 다랑쉬 굴 정밀조사를 벌인 결과 1999년 실시한 조사에서 발견된 28점보다 3배 이상 많은 102점이 조사됐다. @제주 MBC


지난 21일자 한겨레 신문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지사가 있는) 경기도 공무원들은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의 공산주의세력이 대한민국의 건국에 저항하여 일으킨 무장 반란이었다'고 기술한 역사교재로 공부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얼마전 서울의 한 경찰서 트윗에도 이같은 내용의 멘션을 올라와 충격을 받았는데 말이죠. 상황이 이런데 '4.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하고, 대통령이 내려와 추모하겠다'니! 립서비스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대다수 국민이 5.16 암묵지지" 경기도, 보수편향 '현대사' 발간 


4.3항쟁의 발발배경은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으나, 단순히 '5.10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무지막지한 서청과 친일파 경찰의 척결하라'고 주장했다는 이유가 제주도 전체를 '빨갱이 섬'으로 몰아 수많은 양민들까지 학살한 명분이 될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4.3유격대를 토벌했던 군경의 고위직에 친일경찰과 일본군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학살 과오를 덮고 토벌의 명분을 만들어보고자 하기 위함 아니냐는 주장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며칠 후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지슬'이 전세계에서 최초로 제주에서 상영을 합니다.

'지슬'이 부산과 선댄스를 비롯한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죠. 특히 '4.3항쟁'의 책임이 있는 미국 한복판에서 대상을 수상한 점은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허나 충격적인 건 이 소식을 전한 뉴스의 댓글에 달린 '빨갱이' 드립입니다. 이들은 4.3을 어느정도나 알고 있을까요,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엄청난 댓글세례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 '지슬' 포스터 @자파리 필름

그렇다면 '지슬'이 과연 '빨갱이 영화'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영화 '지슬'은 여전히 "4.3때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말 문을 닫아버리고, 시대와 상황이 변했건만 여전히 '나서다 또 고생할까' 두려움에 떨며, '좌익들이 많이 출몰했다'는 이유로 마을 전체가 연좌제 아닌 연좌제에 시달렸던 상처가 여전한 '그'을 대변하는 컨텍스트라고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건,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있어서인지, 그래서 외면하고 싶어서인지 '육지'에서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제주에서는 뜨뜨미지근한 느낌입니다. 5.16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나 '26년'이 개봉됐을때의 광주와도 온도차가 커보이고요. 


또 다시 제주가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광풍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많은 제주 주민들이 '지슬'을 감상하며 그때를 재조명해보고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4.3으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 아픈 상처가 남아있는 가족이라면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간만에 극장나들이를 부탁드립니다. 


나의 탯줄이 묻어있는 이곳의 존엄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날것 그대로의 역사와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을 외면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지슬'의 선전을 응원합니다. 


영화 '지슬' 시놉시스


1948년 11월. 제주섬 사람들은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는 흉흉한 소문을 듣고 삼삼오오 모여 피난길에 오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어디서부터 일어나고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산 속으로 피신한 마을 사람들은 곧 돌아갈 생각으로 따뜻한 감자를 나눠먹으며 집에 두고 온 돼지 굶주릴 걱정, 장가갈 걱정 등의 소소한 가정사를 늘어놓으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제주 3월 1일 개봉, 전국 3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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